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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고래사냥' 음반 19금, 또 뭇매맞는 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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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8-21 17:15:55

    최근 시중에서 가장 입에 오르내리는 얘기 중에 하나가 ‘고래사냥’이 최근 19금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김윤아가 ‘나는 가수다’(MBC)에서 불러 새로운 붐을 일으킨 바로 그 노래다.

     

    가사 중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에서 술이 들어갔다는 이유란다. 황당한 건 똑같은 가사지만 송창식의 원곡은 괜찮고, 김씨의 편곡은 새 음반이기에 현행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설마~장발 단속하던 유신시대도 아닌데....”. ‘놀러와’에 출연한 세시봉 식구들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이 노래는 유신시대에 고래사냥이 포경수술을 의미한다고 해 금지곡이 되는 웃지못할 일이 있었다.

     

    김윤아가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고래사냥'.

     

    게임법에서 ‘10시 이후 온라인 통행금지’를 주장해 파문이 일었던 여성가족부가 이번엔 음반 심의를 놓고 뭇매를 맞고 있다. 여성부는 지난해 11월 게임법 입법 발의를 하며 “게임은 마약과 같기 때문에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군색한 논리를 펴서 게임업계는 물론 네티즌들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반심의다. 지난 19일 여성부 홈페이지는 음반 심의에 항의하는 네티즌들의 집중적인 접속으로 일시 다운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여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지난 14일 비스트, 백지영, 박재범 등의 노래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고지했다. 팬들은 '19금' 딱지를 붙인 데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팬들을 중심으로 네티즌들이 여성부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면서 접속 장애가 발생한 것.

     

    네티즌들은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의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란 가사가 청소년들에게 음주를 조장한다는 심의 기준이 모호하고, 음반 사후 심의의 실효성이 없다고 반발했다. 20일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비스트 소중한 정규 1집 지켜주세요'라는 청원 운동까지 벌어져 하루 만에 1만5000여 명이 서명한 상태다.

     

    문제는 게임법의 셧다운제를 놓고 주장했던 담당이 똑같이 청보위라는 것. ‘담배’나 ‘한모금의 맥주’ ‘술’이라는 말이 나오면 무조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는 모양새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법에서 받은 비판도 비슷했다. 이 법에 따르면 아이들은 기껏해야 보호대상일 뿐이다. 게임업계가 헌법소원을 청구중일 정도로 ‘국가가 가정사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게임의 경우 실제 PC방의 오후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금지는 이미 5년 전에 마련되었다. 그런데 과도한 단속으로 인해 국가가 개인을 사생활을 관리하는 별종의 법이 탄생했다. 집에서 인터넷을 하든 게임을 하든 관리하는 것은 국가가 아닌 전적으로 부모들의 몫인데도 말이다.

     

    음반심의의 경우 과잉 심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인디밴드 10cm의 음악 '아메리카노'와 아이돌 그룹 2PM의 'Hands up'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지난 16일 회의에서 청소년 유해물로 최종 지정했다. '아메리카노'의 경우 가사에서 "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와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담배 필 때" 문구가 유해약물과 관련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소속 그룹 SM 더 발라드의 노래 '내일은…'이 가사에 술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데 반발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지난 2월엔 인디밴드 보드카레인도 3집 음반이 수록곡 '심야식당'의 노랫말에 '한 모금의 맥주'란 가사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되자 이에 반발, 청소년이 무료입장하는 '3집 청소년 유해매체 선정 기념-무해한 심야식당'이란 타이틀로 여성부를 조롱하는 공연을 열기도 했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된 음반은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19세 미만 판매금지'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판매해야 한다. 방송에서 밤 10시 이전에 나갈 수 없다. 또 음악사이트에 배포하거나 방송활동과 공연 등에 사용될 경우 지적된 부분의 가사를 수정해야 하는 등 많은 제약이 따른다.

     

    여성부는 이 같이 무리한 심의가 인터넷에서 점차 이슈화하자 뒤늦게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심의 결과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재심의 제도가 내년에나 시행된다. 더욱이 음반 심의 잣대 자체가 모호해 음반 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청보위가 전문성이 없다는 것. 청소년 보호와 관련한 전반적인 매체물을 다루는 기구로 음반 심의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는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음반심의위원회(이하 음심위)를 따로 구성, 심의를 1차적으로 맡기고 있다.

     

    그동안 비공개였던 음심위 위원들도 여론이 들끓자 20일 공개됐다. 국회 여성가족위 소속 김재윤·김유정(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음심위는 위원장인 강인중 라이트하우스 대표 등 9명이었다.

     

    강미화 경실련 미디어와치 회장과 강은경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기획위 위원, 김창우 엠넷미디어 편성기획부장, 성우진 음악평론가,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이영희 한국 청소년CEO협회 이사, 이재춘 SBS 라디오 편성팀장, 최은아 교총 청소년복지분과 부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김유정(민주당) 의원은 "모호한 음반심의 기준으로 논란이 계속되는 것도 문제지만 인디밴드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소속 가수들과는 달리 소송 등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키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인디밴드 활동을 더 위축시키는 현재 심의 절차와 기준은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들인 뮤지션들이 “헌법소원이라도 내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무더기 음반 19금 판정. 게임법의 황당한 발상처럼 이번에는 모처럼 뜨고 있는 K-POP 종사자들, 음악 종사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베타뉴스 카프카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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