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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겠다 vs 못 믿겠다, 한국GM 의지 확인될까


  • 최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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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02-24 12:20:29

    한국GM 정상화 놓고 미국 GM과 협상국면 본격화

    한국GM 정상화를 놓고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와 정부 간에 본격적인 협상 국면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GM의 '지속경영 의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GM은 최근 방한했던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GMI) 사장의 입을 통해 이미 지속경영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정부는 GM이 과거 해외 시장에서 철수했던 전례와 한국GM과의 비정상적인 경영 구조 등을 근거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협상에 진통이 예상된다.

    스웨덴과 독일에서 지원받고도 철수

    24일 업계 등에 따르면 엥글 사장은 지난 20일 국회 면담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 남고 싶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한국 정부로부터 만족할만한 지원을 얻지 못할 경우 완전 철수를 선택지로 고려하느냐는 질문에도 'stay'라는 단어를 쓰면서 사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강조했다.

    한국GM이 GM 내 생산, 디자인, 엔지니어링 허브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쉽게 포기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한국GM의 꾸준한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GM이 철수를 안 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판단한다. GM이 과거 다른 나라에서도 공장 폐쇄를 저울질하며 재정 지원을 압박해 연명하다가 회생에 실패하고 결국 짐을 싼 전례가 있어서다.

    GM은 2004년부터 스웨덴 사브 공장 폐쇄를 검토한다고 발표하면서 대량 실업을 우려한 스웨덴 정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포함한 지원책을 끌어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파산 위기에 처한 2009년에는 스웨덴 정부에 긴급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사브에 대한 파산보호 신청을 거쳐 매각을 결정했다. 사브는 2010년 매각된 후 여러 부침을 겪다가 작년 6월 청산했다.

    같은 시기 GM 계열사 오펠도 경영난에 처하자 독일 정부는 15억유로(약 2조원) 규모의 구제 금융을 조성해 오펠을 지원하고 캐나다 부품사인 마그나로 매각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지적재산권 유출을 우려한 GM은 매각을 무산시킨 뒤 독일 정부에 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지원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독일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2012년부터 보쿰공장 폐쇄를 비롯해 GM의 구조조정이 이어졌지만, 오펠은 결국 흑자 전환에 실패하면서 GM의 영국 계열사인 복스홀과 함께 작년 3월 프랑스 푸조·시트로앵(PSA) 그룹에 매각됐다.

    ▲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 사진=연합뉴스

    수익성 없으면 가차 없이 '철수'

    2014년 메리 바라 회장 취임 전후로 공격적인 사업구조 재편에 나선 GM의 움직임도 철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2013년 말 호주에서는 홀덴공장을 운영하던 GM의 철수설이 흘러나왔다. 판매가 부진한 가운데 GM이 호주 정부로부터 받던 보조금이 2014년부터 끊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GM은 2012년 호주 정부로부터 향후 10년간 10억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홀덴공장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하고 2억7천만달러를 선지급 받은 상태였다.

    GM은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We're here)라는 문구가 삽입된 TV 광고를 방영하며 철수설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자 홀덴공장을 2017년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지난해 10월 공장 문을 닫으며 최종 철수했다.

    2015년에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러시아 등 신흥시장 세 곳에서 연달아 공장을 폐쇄했다. 모두 경쟁사에 밀려 판매가 부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장이었다.

    작년에도 인도에서 점유율이 낮은 내수 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합작해 운영하던 상용차 사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짐을 쌌다.

    이처럼 GM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축으로 두고 나머지는 '기타 시장'으로 정리해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과거 GM의 글로벌 생산 거점이었던 한국 역시 '기타 시장'으로 분류돼 중요도가 상당히 낮아졌다는 점에서, GM이 완전 철수를 결정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최근 낸 '철수론 이후 한국GM의 대안' 보고서에서 "GM은 2019년까지 GM 인터내셔널(GMI)이 흑자 전환하지 않으면 과감한 결정(Bold Decision)을 하겠다고 자체 보고서에 적시했다"며 "여기서 GMI는 한국을 뜻하고 과감한 결정이란 철수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 한국GM © 사진=연합뉴스

    의혹 여전한 GM-한국GM 간 비정상 거래

    한국GM이 GM과 비정상적인 구조로 연결돼있다는 점도 GM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GM이 본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법인으로만 기능했기에 이미 막대한 이득을 본 GM이 철수해도 남는 장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GM은 2014∼2016년 GM 본사에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총 1조8천580억원, 연평균 6천억원가량을 지급했다.

    이는 매출액의 5% 안팎이자 해당 3년간 누적 손실(1조9천718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기업이 어려우면 연구개발비를 줄이는 일반적인 행태에서 크게 벗어난다.

    같은 외투기업인 르노삼성과 비교하면 더 의문이 남는다. 노동자운동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지난 5년간 연구개발비로 7천200억원을 썼고 르노 본사로부터 그 대가로 8천억원을 받았다.

    이와 달리 한국GM은 5년간 3조원의 연구개발비를 쓰고도 본사로부터 받은 대가는 5천억원에 불과했다. 이밖에 GM은 한국GM을 상대로 고리대금 장사를 해왔다거나 업무지원비 명목으로 한국GM에 과도한 부담을 지웠다는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GM은 지난 5년간 GM 본사에 총 5천억원의 차입금 이자를 냈고 업무대행료 등으로도 모두 5천억원을 지급했다. 이 기간 한국GM의 누적 적자액 2조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GM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놓고 지난달 말 만기가 된 외화차입금 약 4천억원을 한국GM으로부터 회수해간 것도 논란이 됐다. 한국GM은 이자 부담을 줄이고자 유동성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상환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나마 GM은 전날 이사회에서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한국GM 차입금 약 7천억원의 회수를 보류하고 부평 공장 담보 요구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의혹이 증폭되는 일은 막았다. 정부는 지속경영에 대한 GM의 진의를 실사 등을 통해 확인할 방침이다.


    베타뉴스 최천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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