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인터뷰

[NDC] 게임의 본질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의 영역


  • 박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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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7-04-27 14:06:54

    넥슨코리아 신규개발본부 프로젝트 A1 하지훈 프로그래머가 26일 진행된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에서 ‘게임플레이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점 : 실력, 운, 노력’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칭해지는 ‘실력겜’, ‘운겜’이라는 용어들이 게임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라 생각하고, 게임플레이를 운, 실력, 노력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각각의 특징, 장점, 약점, 보완책에 대해서 여러가지 사례를 들며 강연을 진행했다.

    먼저 그는 ‘게임은 경쟁’이라 정의했다. 대부분의 게임은 적과 싸우는 경우엔 내 능력을 겨루고 팀을 나눠서 경쟁하기도 하며 심지어 아군과도 경쟁하는 것은 물론 혼자 하는 싱글 플레이 게임도 스코어보드로 경쟁을 한다.

    심지어 경쟁으로 보이지 않는 마인크래프트도 남보다 더 멋진 집과 재료를 모은 것도 경쟁이고, 로그라이크 게임의 경우 엔딩을 보는 등 다른 사람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 이처럼 ‘게임은 누군가와 경쟁을 하니까 재밌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우월감이나 쾌감을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고 이런 쪽이 다른 쪽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력게임은 반응속도와 빠르기, 정확성 등 신체 능력을 겨루는 게임과 탐색이나 지식(기억력), 멀티태스킹, 문제해결능력 등 두뇌능력을 겨루는 게임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고, 그래서 이기기 위해 실력이 늘면 기분이 좋아지도록 진화해왔다. 마치 헬스장에서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날 때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본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하다 보면 실력이 조금씩 늘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운게임은 운이 좋은 사람이 이긴다고 얘기하지만 이길 수 있는 전략이 없다. 그래서 실력이 늘 수가 없으니 ‘왜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저들은 운게임을 일종의 스릴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를 스릴로 인식하려면 반드시 보상이 필요하다. 같은 게임을 해도 보상이 클 수록 스릴은 더욱 재밌어진다. 해외의 가위바위보 챔피언십은 1등에게 5천만원을 주는 것처럼 운게임의 재미는 보상의 규모와 비례한다.

    노력게임은 ‘자산이 많은 쪽이 이긴다’라고 얘기한다. 이런 게임은 RPG나 ‘클래시오브클랜’ ‘어비스리움’처럼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과 노력을 비교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노력게임에 투자는 시간과 돈이 유사한 가치를 가진다. 자산이 늘어나는걸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건 인간의 본능이며 그냥 늘어나는걸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쾌감이 든다. 자산이 늘어날 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고 한다.

    이들 실력, 운, 노력게임은 성장곡선이 다 다르다. 실력게임은 초기엔 실력이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실력 증가가 멈추는 느낌을 가진다. 사람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서 내 실력에 한계가 오면 정규 분포를 따른다고 예측할 수 있다. 실력게임의 재미는 실력증가와 밀접하게 연관돼있어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저는 쉽게 탈락한다.

    운게임은 운이 시간에 따라 증가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운이 다르겠지만 결과는 비슷하고 어느 정도 공평하고 결과 분포표를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노력게임은 평이한 성장 곡선을 가지고 있는데 그 끝에는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유저가 어떤 속도로 콘텐츠를 소비할지는 예측이 매우 어렵다. ‘디아블로3’에서도 출시 5일만에 불지옥 디아블로가 잡혔는데 이는 천하의 블리자드가 예측하지 못한 경우다. 그리고 실력-운과 달리 노력게임의 경쟁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시점에서 상한선을 높여주는 업데이트가 필수다.

    발표자는 게임 개발자가 알아야 할 사실을 몇 가지 지적했다. 첫 번째는 ‘실력게임은 수명이 짧다’다. 실력게임은 성장이 더뎌지는 시기가 오면 제공할 수 있는 재미가 줄어든다. 그래서 어느 시점이 되면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걸 인지하고도 수명이 긴 실력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리그오브레전드’이 많은 챔피언을 만든 것처럼 실력적 요소를 아예 여러가지로 만들거나 노력이나 운적인 요소를 첨가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실력겜은 선점이 중요하다’다. 실력게임의 재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다. 그리고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도 소진된 재미가 복구되지 않는다. 후속편도 잘 만든 게임이지만 이미 유저들이 1편에서 재미를 다 느껴서 전편처럼 흥행하지 못한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2’처럼 말이다.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도 처음부터 다시 재미를 느끼는 노력게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발주자로 진입하는 게임은 노력적 요소를 포함해 변주를 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3매치 퍼즐 시장에서 최강자였던 ‘비주얼드’를 압도한 ‘캔디크러시사가’처럼 스테이지를 도입하는 노력적 변주가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순수 운게임은 성립되기 어렵다’다. 운게임은 필수적으로 보상을 요구한다. 현실에선 줄 수 있는 보상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게임으로는 현실적인 보상 제공이 어렵다. 여기에는 사행성과 선정성 저촉 측면이 있는데, 현실에서 보상을 줄게 아니라면 노력게임처럼 보상을 크게 줘야 한다고 말한다.

    네 번째는 ‘게임에 엔딩이 있으면 게임에서 불거지는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다. 이러한 문제는 게임 수명을 늘리려는 부분에서 발생하는데 엔딩이 존재하는 게임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엔딩이 있는 실력+노력+운 게임은 이상적 게임이라 할 수 있지만 이건 회사의 입장에서는 개발이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적인 요소는 실력에 대한 착각을 유발한다’다. 사실 운과 실력을 구분하는 건 현실에서도 어렵다. 그리고 실력이 좋은 사람이 꼭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게 일반적 상식으로 여겨진다. 과거 철권 프로게이머 ‘무릎’이 남규리에게 패배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운적인 요소를 첨가해 유저의 착각을 유발하는 건 유용한 게임 개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리전을 통해 실력게임이 될 거라고 개발자가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게임을 좋아하는 건 본능의 영역이다.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 무작위로 결정되는 것,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뿌듯해 하는 것들은 생존을 위해 견뎌야 하는 역경 중 하나다. 그래서 사람이 게임을 좋아하는 건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라며 발표를 마쳤다.


    베타뉴스 박상범 (ytterb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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