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국민연금 신뢰회복을 위한 제언...공적연금 국가 재정 책임론 '급부상'


  • 조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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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11-14 02:39:49

    ©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은 전세계적인 화두다. 연금 제도가 무르익으며 세계 각국이 공적연금 소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건은 정부가 공적연금 개혁에 ‘골든타임’을 잡을지 여부다.

    정권마다 국민연금에 메스를 대지만 정부와 국민의 갈등 심화, 국민연금의 신뢰도 하락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포함한 연금개혁에 사회적 합의를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적연금 개혁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선진국은 국민적 합의에 기반해 연금을 개혁하고 국민의 세금부담도 덜어줬다.

    정부는 20년째 월 소득 9%에 머물러 있는 국민연금 보험요율을 최소로 인상하고도 '덜내고 더받는' 마법의 개혁안을 이달 안에 마련해야한다.

    또 국민연금 고갈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가가 연금지급을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쥐꼬리 수익률에 고갈 우려까지 제기된 국민연금이 이번 개혁으로 신뢰를 회복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부는 보험료율 인상(12~15%), 연금 수급연령 상향조정(65→68세), 의무가입 기간 연장(60→65세 미만), 고령자 연금액 삭감 등을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의 고갈시기를 늦추는 게 목적이지만 가입자의 혜택은 줄고 부담은 커진다는 불만이 높다.

    현행 연금법은 연금 받는 나이를 5년마다 한살씩 늦춰 2033년에는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규정한다. 1957~1960년생은 62세,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에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개편되면 연금받는 나이는 65세에서 68세로 올라가 노년의 연금부담이 늘어난다. 은퇴 후부터 연금이 없는 '연금 크레바스'가 길어지는 셈이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죽을 때까지 연금만 내라는 말이냐", "죽을 때 주는 건 국민연금이 아니라 장례 비용이다"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연금 지급을 명문화하는 개혁안도 논란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정도로 국가 책무를 규정한다. 개혁안은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정부가 연금 지급 부족분을 부담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하는 공무원연금과 같은 식이다. 정부는 2001년부터 공무원 연금지급에 공무원의 보험료(기여금)와 정부 부담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년 1조~3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공무원의 노후보장은 안심이지만 세금으로 특정 가입자의 배를 불린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14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복지위원장의 의견에 따르면, 현행 9%의 국민연금 보험료만으로도 영세 자영업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의 재정 책임 이행 없이 곤궁한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기면 또다시 2004년과 같은 '국민연금 폐지 운동'이 열화와 같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도 그런 주장들이 잠재돼 있다. 국민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바람직한 정책도 자칫 거칠고 성급하게 시행하면 가난하고 고달픈 삶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공적연금에 대한 재정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해 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노후 빈곤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극심한 노후생활 불안과 노인 자살의 원인이 된다. 매년 3000명 이상의 어르신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상황이다. 이런 노인들의 모습을 본 젊은이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 이는 공적연금에 누적되어 온 적폐다.

    이 모든 원인에는 잘못 설계되고 왜곡 운영돼 온 공적연금 제도가 있다. 특히 핵심 노후 소득 보장 수단인 공적연금 제도에 대한 재정 책임을 방기해온 국가가 있다. 마땅히 부담해야 할 공적연금에 대한 비용 부담을 국가가 교묘히 방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연금이 노인 빈곤 예방과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재정 불안정 이슈는 끝없이 제기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노후 불안 사회의 그늘을 걷어내지 못하며 경제성장도 사회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

    공적연금 같은 사회보험의 재정은 '3자 부담'이 원칙이다. 국가, 고용주, 근로자가 함께 급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여 적절한 연금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근로자가 낸 돈에 운용 수익만 붙여 돌려주는 것은 강제적인 저축이나 개인연금이지 공적연금이 아니다. 여기에 국가가 빠지고서야 어찌 모든 가입자들의 '적절한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공적연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재원 부담 책임의 중요한 한 축인 국가는 빠지고 고용주와 근로자가 모든 부담을 떠맡는 것을 원칙이라고 국민들을 믿게 해왔다.

    그러다가 공무원연금의 기금 고갈로 2000년 이후 이 원칙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3자 재원 부담 원칙을 이행하지 않은 잘못을 사과하거나 재원 부담 기준을 투명하게 할 방안을 강구하기보다 '보전금'이라는 편의적 제도를 만들어 의혹과 국민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보전금'의 성격이 불명확하니 정당성도 인정받기 어려워 애꿎은 공무원들만 죄인 취급을 받게 만들고 있다. 국민연금도 2004년에 '공적연금 폐지 운동'이 일어나 연금 제도 존립의 문제까지 위협받았다. 그러자 슬그머니 국가 재정을 조금씩 투입하고 있다. 두 연금 제도 공히 국가 재정 투입 원칙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시혜를 베풀 듯 하고 있다. 이는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재정적 보수주의'라고 말하는 이 국가의 재정 책임 회피 관행은 공적연금 부문에서 오래된 적폐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적연금의 모든 이슈의 근저에는 이 문제가 있다. 그러니 지뢰밭과 같은 이 문제를 아무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꾸로, 이 문제를 직면하여 해소하게 될 때 공적연금의 많은 문제들이 일거에 풀릴 수도 있다. 차제에 문재인 정부는 '공적연금 재정의 3자 부담 원칙'을 명확히 천명하고 이행 의지를 밝혀 공적연금에 만연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현재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의 지급 보증' 요구도,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거부감도, 국가가 공적연금에 대한 재원 부담의 원칙과 기준을 준수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국가 예산을 많이 투입하라는 주장은 아니다. 가입자들에게 모든 재정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고유한 재정 책임만이라도 분명히 인정하고 이행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가 공적연금에 대한 재정 책임을 이행하지 않음으로 발생한 노후 빈곤, 노인 자살, 사회 갈등에 대해서도 해명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의 신뢰 회복은 물론 연금 빈곤, 용돈 연금, 연금 격차, 재정 안정화, 세대 간 형평 문제들을 획기적으로 완화할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의 한 수'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구조적 개혁' 방안과 함께 공적연금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최근 '공적연금강화국민연대'등을 중심으로 국민연금법에 국가의 지급 보증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8월 2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가의 지급 보증 명문화 방안을 검토해 보도록 지시했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직접 국가의 지급 보증을 법에 명시하는 것은 세계 공적연금에서 유례가 없으니 더 실효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실질적 국가의 재정 책임 이행 없이 지급 보증 규정만 명시한다면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오히려 현재 공무원연금법에 규정된 무원칙한 '보전금' 규정을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공무원연금의 보전금 방식은 국민들에게는 혈세를 귀족 연금에 지원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과도한 비난의 빌미를 주고 있다. 반면에 제도 운영 책임자들에게는 보전금이 무한정 늘어나도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국민들은 또 이 점을 우려하며 더 강하게 비난하게 된다. 공무원 사회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안이한 제도 운영, 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불행한 일이다. 이를 자초하는 보전금 규정은 잘못된 규정이니 바꿔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 국가의 지급 보증 규정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도 냉정히 검토해야 한다. "현재 수준의 연금을 반드시 지급하도록 국가가 보증하겠다"고 명문화 할 수 있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지급 보증의 취지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국가와 가입자들이 함께 재원을 분담해야 하는 사회보험의 기본원리를 벗어나게 된다. 또한 사회보장 정책은 불확실한 상황 발생 시 제도 변경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적연금 가입자인 고용주와 근로자들에게 실질적 재정 지원 효과가 있으면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보험의 보편적 원칙에 입각한 재원 부담 기준을 각각의 공적연금법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즉, 법에 급여 재원의 3자 부담의 일반적 원칙을 규정하고, 국가, 고용주, 근로자 각각의 부담 기준을 시행령에 위임하여 융통성 있게 규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법의 '보전금' 규정도 그런 원칙에 따라 관련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무원연금 제도는 3자 부담 원칙이 적용되는 기본소득보장연금 부문(사회보험 부분)과 사용자인 국가가 재원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 직역연금(퇴직연금) 부분이 혼재되어 있어 국가가 부담할 부분을 가려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공적연금은 사회보험이고 따라서 제도 관련자들이 협력하여 노후 소득 비용을 준비해서 퇴직 이후에 이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관련자라 함은 고용주와 피고용 근로자를 말한다. 하지만 국가도 중요한 이해 관련자다. 공적연금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제도 가입 및 제도 내용을 강제한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다.

    국가가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개인의 노후 소득 보장 노력을 강제할 사회적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사회적 필요는 국민 개개인의 노후 소득 보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연금 제도 가입을 강제하여 노후 빈곤자를 줄임으로써 미래의 국가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또한 건전한 소비를 유도하여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기도 잘 순환하게 한다.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득이 된다.

    요컨대, 국가는 사회보험의 하나인 공적연금을 튼튼하게 운영함으로서 국가의 존립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는 공적연금 가입을 국민들에게 강제함으로써 얻는 이익에 상응하는 재정 지원을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공적연금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국가는 최대한 모든 국민들이 제도에 가입하여 적정 연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각적 조치들을 취해야 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는 사회 안정과 공동체 발전에 필요한 기능을 공적연금 제도에 위임하여 수행하기도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도 국가가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

    예를 들면 사회의 양극화 방지를 위한 소득 재분배에 소요되는 비용, 국가 방위를 위한 군복무, 출산이나 육아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의 소요기간을 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국가가 할 역할을 공적연금에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사회적 가치 증진을 위한 활동기간을 제도 가입기간으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 폭도 그만큼 크다.

    우리나라와 달리 선진 복지국가들은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재정 책임을 확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3자 부담의 원칙이 자연스럽게 이행되고 있으며, 매년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의 기준을 노사정 3자가 협의해서 정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연금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반반씩 분담하는 것 외에 국가가 급여비용의 20~30%를 부담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보면 선진국들이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재정 책임을 얼마나 철저히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공무원연금에 사용자로서 공무원과 함께 부담하는 기본소득보장연금 비용, 사용자가 전액을 부담하는 퇴직연금 비용, 공무원의 신분상 제약을 보상하는 추가 비용을 부담한다. 여기에 제도 공급자로서의 기본적 재정 책임까지 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가의 공무원에 대한 연금비용 부담은 공무원 부담의 4배 이상이나 된다(미국 5:1, 일본 3.4:1, 오스트리아 5:1, 프랑스 8:1, 독일 전액 정부 부담).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국가가 공무원연금에 공무원 부담 비용의 약 2배 만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이전에는 공무원과 국가가 각각 1:1 비율로 비용 부담을 하도록 했으니 공적연금에 국가가 얼마나 재원 부담 책임을 방기했는지 알 수 있다.

    선진 복지국가들이 공적연금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그 국가들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공적연금의 원리상 당연히 부담해야 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국가는 중요한 재정 부담의 주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1:1 재원 부담 원칙을 고수해 왔다. 최근에 국가 재정 지원을 조금씩 늘리고는 있지만 임의적으로 할 뿐이다. 이를 제도화 시켜야 한다. 국가의 재정 책임 없이 보험료 인상을 논의한다면, 선후가 바뀐 것이다.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재정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공적연금 정상화의 첫걸음이고 종착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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