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스마트TV'를 놓고 벌이는 KT와 삼성전자의 명분 없는 전쟁


  • 권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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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2-02-13 21:56:32

    온 나라가 '스마트TV'로 떠들썩하다. 기능이 훌륭하거나 제품을 못구할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대 인터넷 업체인 KT와 글로벌 TV 시장 1위인 삼성전자가 한바탕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마트TV' 전쟁은 KT 위기감의 발로

    스마트TV는 인터넷이 가능한 TV다. 인터넷선을 연결하면 스마트TV는 안테나 없이도 뉴스를 보고, 웹서핑을 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고화질(HD)급 방송은 물론 3D 영화까지 볼 수 있게 됐다.

     

    상황이 이정도 되다 보니 통신사 입장에선 위기감이 팽배하다. 잠깐 손놓고 있다보면 TV 제조사가 방송 사업까지 할 기세다. 결국 인터넷 업체의 맏형격인 KT가 나섰다. 삼성전자 스마트TV 관련 서버의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스마트TV에서 앱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허브(스마트TV 포털)에 로그인을 해야 한다. KT는 스마트 허브로 접속하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때문에 삼성전자의 스마트TV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예 해당 기능이 먹통이 돼 버렸다. 반값 TV보다 2배 가까이 비싸게 주고 산 스마트TV가 정작 스마트 기능을 쓸 수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KT "스마트TV 백본망 마비 위험"...그렇다면 IPTV는 괜찮나?

    KT는 삼성전자의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기 때문에 인터넷 연결을 끊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KT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로선 삼성전자의 주장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이미 300만명이 넘는 KT의 IPTV 가입자는 초당 3~11.8Mbps의 실시간 IPTV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TV를 틀고 방송을 보는 내내 이 같은 트래픽이 발생한다. 삼성전자는 HD급 콘텐츠를 본다 해도 초당 1~8Mbps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KT는 스마트TV의 경우 데이터 사용량이 많아 수십만 명만 동시에 영화를 볼 경우 백본망이 마비돼 우리나란 전체 인터넷망이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KT, 처음엔 스마트TV가 15~20배 데이터 많이 쓴다더니...

    KT는 스스로 측정한 데이터 일부를 공개하며 맞섰다. 3D 콘텐츠의 경우 최대 20~25Mbps에 달한다는 것이다. 당초 얘기했던 15~20배의 데이터 트래픽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KT가 최대치로 잡은 25Mbps에 달한다고 해도  IPTV의 3배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사용자 중 KT의 인터넷 회선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만 명을 채 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국내 판매한 스마트TV를 모두 합쳐도 80만 명에 불과하다.

     

    국내 판매된 스마트TV 가입자가 80만명이 모두 KT의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동시에 최대 25Mbps를 사용한다고 해도 KT의 300만 IPTV 가입자가 동시에 실시간 IPTV를 볼 때 발생하는 트래픽보다는 적다.

     

    때문에 스마트TV가 IPTV 보다 15~20배 가량 많은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KT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스마트TV 사용자는 대부분 실시간 방송을 제공하는 공중파 또는 케이블, IPTV를 본다. 여기에 더해 IPTV 사용자가 더 늘어날 경우 KT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소비자들의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약관상 인터넷 서비스를 PC가 아닌 다른 기기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KT와 삼성전자의 다툼이지만 애꿎은 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셈이다. 이유 없이 스마트TV에서 스마트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은 삼성전자와 KT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서로 상대방 때문이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하고 있다.

     

    KT와 삼성전자 싸움에 등장한 애플

    삼성전자와 KT의 싸움에 애플이 등장한 대목도 재미있다. 여기에선 KT의 명분이 더 줄어든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이 쓴 트윗을 보면 조금 더 곡해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라는 생태계를 열기 위해 삼성전자처럼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시작하기 위해 통신사와 충분한 협력을 거치며 이상적인 협력 모델을 만들었지만 삼성전자는 독단적으로 나서며 불협화음만 자아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애플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해 애플 아이폰의 서비스 문제로 KT의 망이 다운됐을 때 KT는 스스로 나서 망을 고도화 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KT는 통신망에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아이폰에 대한 인터넷 접속 금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스마트TV의 경우 문제가 아직 발생한적도 없는데 가능성이 다분하니 미리 차단하겠다는 얘기를 한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사례를 들자 KT는 스마트폰과 스마트TV는 시장이 다르다고 항변했다. 스마트폰의 경우 이통사의 통신 서비스와 연계해 판매하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스마트TV는 인터넷 연결과 관련한 부분은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두 문제를 같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정도 되면 표현명 사장의 설명이 얼마나 모순인지 알 수 있다. 삼성전자를 나무랄 때는 애플보다 못하다고 비난하고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형평성을 주장할때는 서로 다른 비즈니스라고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결국 KT가 원하는 것은 인터넷 종량제"

    전자업계는 KT의 스마트TV 차단을 놓고 '인터넷 종량제'로 국면 전환에 나선것으로 보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 제조 업체 역시 이와 같은 사례는 종량제 외에는 해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표 사장의 트윗에서도 이 같은 생각이 드러난다. 표 사장은 트윗을 통해 OECD 국가 중 약 70%가 망 사용량을 제한하거나 트래픽에 대한 과금을 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망 사용량을 제한하거나 트래픽에 대한 과금을 하는 행위가 바로 인터넷 종량제다.

     

    하지만 다음 트윗에서 표 사장은 다시 인터넷 종량제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종량제는 안 하는 대신 스마트TV 업체들에게 돈을 받겠다는 설명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통신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결국 KT가 원하는 것은 인터넷 종량제"라며 "망중립성 논의가 끝나기 전 종량제를 부활시켜 유선 시장에서 수익을 챙기고 망 사업자로서 갑의 지위를 확실히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망 사업자로 전락' 두려워 하면서, 망 운영대가에 집착하는 KT

    KT의 위기감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KT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망 사업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분이 부족하다. KT가 삼성전자에 망 사용대가를 달라고 하는 것은 망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겠다는 것 뿐, 새로운 서비스나 사업을 창출할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번 논란은 결국 망중립성 문제가 마무리 지어지거나 현행 정액제 인터넷이 종량제로 전환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불거질 전망이다. 앞으로도 통신사들은 종전 자신들의 사업 영역에 계속해서 도전을 받을 것이다.

     

    이미 문자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무료 문자 서비스가 점령했고 음성 통화 역시 조만간 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통해 무료화가 될 전망이다. IPTV 서비스는 스마트TV와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하지만 KT의 명분 없는 망 사용료 부과 움직임은 시대를 역행하는 셈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적절한 대가를 내고서 KT의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KT는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속도에 따라 요금을 달리 받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삼성전자와의 협상이 끝나기 전 소비자들이 스마트TV를 사용하는데 제한을 해선 안될 것이다.


    베타뉴스 권진영 (retro7409@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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