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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연극 배고파 4, 상처받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이여 사랑하라.


  • 김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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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2-02-09 22:33:00

    연극 배고파 4, 상처받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이여 사랑하라.
    배고픈 두 주인공의 구애 대작전. 밀당 없는 불장난의 끝은~

    외롭다고 징징대고, 아무리 달래도 뒤 돌아서면 칭얼거리는 이런 캐릭터 정말 짜증난다. 실연 당한이라면 공감하는 모습이지만 현대인에게도 낯설지 않다. 혼자라고 여겨질 정도로 냉철한 세상에서 빈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습하는 차가운 고독.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고독 마저도 정겹다고 여긴다면 그대는 정말 외로운 것이다. 그렇다. 짜증나는 캐릭터가 바로 자신이라는 현실. 달갑지 않다.

    오죽하면 노랫말에서도 고독을 절절하게 표현했을까! “ 전화번호부를 열어본다/가나다순으로 줄 세우니 삼백 명쯤 되는구나...가나다순으로 보다 보니 일곱 번쯤 돌았구나 ― 장기하와 얼굴들 2집. 깊은 밤 전화번호부 대사 中”인정하기 싫지만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음직하다.

    누구에게나 노랫말처럼 고독이란 불청객은 가까이 있다. 외롭다~ 아무리 외쳐도 누구 한 번 들여다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랑을 다오~’ 라는 푸념은 그저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연관 지으려고 하는 게 사치일 뿐이다.

    연극 배고파의 주인공도 그랬다. 고독이란 녀석과도 친해지려고 했지만 그 조차도 버림받은 기분. 외롭다 것 외에는 별 다른 게 없다. 세상에서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주인공의 고독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단으로 표출된다.

    허나, 이 같은 상황. 왠지 남일 같지 않다. 갈수록 고독한 상황에 처하는 인간을 두고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며 구호를 아무리 외쳐봤자 정작 누구 한 명 감싸주는 이가 없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따뜻한 배려와 말 상대를 그리워했을 뿐인데 세상은 작은 자비조차도 베풀지 않았기에 배고픈 주인공은 높은 담 위에 오른다. 한걸음 한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떼 올라간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차가웠다.

     


    |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참 친절한 작품이다. 외로운 고독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고독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배고프단다. 얼마나 배고픈 연극일까 했다. 제목과 달리 마음이 고독한 이의 푸념 섞인 자조가 시작부터 무대를 뒤흔든다. 사랑에 지독하게 굶주린 이의 사연이지 않겠나 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것이 사랑이라고 그랬던 가! 그래서 더욱 그랬다.

    지켜보니 사랑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관심이라도 좋다고 여기는 두 남녀 주인공의 지독한 고독과의 사투. 이 둘은 정말 외로운 자다. 아니 극중 표현으로 한다면 배고픈 자다. 너무도 굶주린 나머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고 처절하게 외친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다. 진정 배고픈 것일까?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애가 늘 그렇 듯 여자 주인공 난자도 동화 같은 사랑을 꿈꿨다. 전날 꿈속에서 만난 백마 탄 왕자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프러포즈할 것만 같은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설렌다.
    극중 남자 주인공 정자는 세상의 외면이 싫다. 프로 시인을 꿈꾸지만 매번 낙방에 좌절만 경험한 그는 바깥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둘 다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사랑받지 못해 이렇게 된 것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자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 두 주인공을 통해 연극은 현대인의 모습을 되짚는다.

    | 준비되지 않은 자의 비극적인 불장난

    첫눈에 반한다고 그랬던가. 존나쓴 형사가 제공한 유통기한 넘은 빵이 두 사람을 극적으로 연결했다. 너무도 같은 둘의 모습에 반해버린 두 주인공.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경우도 없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우울하던 공연장이 환해진다. 사랑이란 당사자에게도 행복하지만 주변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닌 것. 그래서 더욱 현대인은 사랑을 갈구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그래서다.

     

    소꿉장난 같은 사랑을 꿈꾸던 이의 탐닉은 육체로까지 번지고 여느 연인이 그렇듯 미래를 꿈꾸던 두 사람. 하지만 남자 주인공 정자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급기야 유일한 돌파구였던 신춘문예 낙방으로 현실이 된다. 믿고 따르는 여자 하나도 챙길 수 없다는 무능함에 스스로를 탓하던 그 때. 여자의 한 마디 “나 임신 했어” 하지만 곧이어 밝혀지는 거짓말. 모든 것은 남자를 더 많이 사랑했던 여자의 욕심으로 드러났다.

     

    불행에서 행복으로 그리고 다시 불행으로. 롤러코스트 같은 상황 변화에 관객도 불편하다. 사랑에 대한 것을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극적으로 표현한 예는 많지 않다. “빵~ 같이 드실래요?” 한마디 대화에서 싹튼 사랑. 하지만 신뢰가 깨지는 순간 뿌리째 뽑혀 내동댕이쳐진 것도 사랑이다. 그 순간 남자의 극단적인 선택이 여자에게 전가되고 무대는 정적에 감싸인다. 조용히 약을 들이키는 여자. 실연의 아픔에 발버둥치는 여자의 선택은 보고만 있어도 아프다.

    | 그땐 덜 성숙해 몰랐던 사랑. 이제야 깨닫다.

    마음 한쪽을 찌르는 것 같다. 연이은 비극에 몹시도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작품. 꼭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할 정도로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남자 주인공 정자와의 사랑이 모두 지워진 여자 주인공 난자. 허나 자살로 죽은 엄마에 대한 기억조차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게 된 여자 주인공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지워졌지만 가장 슬픈 기억도 잊혔졌기에 .

     

    절벽에서 모든 것을 버리려다 어렵게 딛고 일어선 남자. 하지만 어렵게 얻은 행복조차도 지켜낼 자신이 없어 물음표를 떠올린다. 바로 앞의 사랑을 두고도 신뢰하지 못한 남자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도 저런 것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하게 만드는 그 순간. 관객의 아픔은 절정에 다다르고 모든 것이 초기화된 상태에서 다시 시작된다.

     

    불행한 기억이 없는 그녀는 고독이라는 불청객과 가까이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스케치북에 남자가 그려낼 행복한 그림이 가득해질 게 분명하다. 남자가 곁에서 그녀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녀석의 마법은 이렇게 싹트기 시작했다.

     

    비극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둘 모두 행복한 해피엔딩인 연극 배고파4. 빵 한 조각으로 이뤄진 사랑의 달콤함을 짜릿하게 표현했고 동시에 사랑에 아픈 청춘의 부작용도 동시에 담아냈다. 죽음마저도 무대 위에 올려 거칠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해 공감하게 만드는 작품. 사랑이 뭘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묘한 이 느낌 뭘까?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것이 사랑이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대는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 cinetique@naver.com


    베타뉴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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