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엔씨소프트 3부작. 온라인게임 혁명 '리니지2와 바츠 해방전쟁'

  • 이덕규
    • 기사
    • 프린트하기
    • 크게
    • 작게

    입력 : 2011-12-27 19:13:35

    <동네 PC방마다 걸려 있던 리니지2 포스터. 한국 온라인게임의 2막을 알렸다>

     

    “게임은 공학적으로 만들어지지만 결과물은 지극히 감성적이죠. 온라인 게임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이용자가 감성적으로 몰입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게 리니지2를 기획한 배경입니다.”
                                                                                    -엔씨소프트 배재현 전무-

     

    저무는 천재의 시대, 온라인게임 '제 2막'이 열리다

    “리니지2는 왜 송재경이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이 질문에서 리니지2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리니지2는 송재경이 만든 게임이 아니다. 그와 리니지를 함께 만들었던 후배들의 작품이다. 단순히 사람만 바뀐 게 아니다. 후속작의 의미를 넘어 한국 게임사의 세대교체를 이룬 이정표와 같은 게임이다. 그럼 '리니지'와 '리니지2'는 어떤 부분이 다를까.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를 두개로 나누라면, 리니지2 이전과 이후로 분류 된다. 리니지가 나왔던 1세대 게임업계는 소위 ‘천재들의 시대’였다. 서울대, 카이스트 등 일류대학 출신에, 앉은 자리에서 프로그래밍을 척척해 내고, 공학적 논리로는 당할 자가 없으며, 기술과 경영 마인드를 모두 겸비한 1% 천재들이 시장을 이끌었다.

     

    김택진, 김정주, 송재경 같은 인물이 1세대 천재 개발자들로 불린다. 이들은 척박한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불후의 명작을 꽃피웠다.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시드마이어’, 울티마 온라인의 ‘리처드 개리엇’, 퀘이크의 ‘존 카멕’ 같은 천재들도 이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이다.

     

    세월이 지나, 200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시장의 흐름은 또 한 번 바뀐다. 더 이상 천재 몇 명에 의존하던 시절은 끝났다. 그러기엔 게임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커버렸다. 온라인 게임은 수백억원의 자본과 수백 명의 개발자가 투입된 거대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엔씨소프트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리니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업무는 김택진, 송재경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엔씨소프트는 제 1목표로 두고 있는 해외사업을 정착시키기 위해 송재경 부사장을 미국으로 보냈다. 미국의 쟁쟁한 개발자들과 어깨를 맞추려면 송 부사장 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그는 리처드 개리엇 등 유명 개발자를 영입하고 현지 조직들을 세팅하면서 해외사업 기틀을 다졌다. 하루의 대부분을 비행기에서 보낼 정도로 미국 일정은 바빴다. 문제는 국내 사업이었다. 송 부사장이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리니지 후속작 개발 시기는 늦어졌다. 아직까지 송재경 없는 리니지는 상상할 수 없는 때였다. 여기서 회사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스스로를 학습형 노력형 개발자라 칭한 배재현 전무. 리니지2로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송재경이 아닌 배재현(현재 엔씨소프트 전무)에게 리니지2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다. 당시 배재현 PD는 현대전자 재직 시절 김택진 대표와 만나 함께 엔씨소프트를 세운 창업공신이다. 한 신문사 인터뷰에선 그를 가리켜 “배재현은 늘 학습하고 노력하는 인재로써 엔씨소프트를 한국 1위의 기술력을 보유한 게임사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앞으로도 이 회사를 떠받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스스로 ‘노력형’, ‘학습형’ 개발자로 부르며 천재형인 송재경 부사장을 늘 최고의 개발자로 꼽는다고 한다. 송재경의 품을 벗어난 리니지2는 시작부터 파격이었다. 먼저 그래픽을 3D로 바꾸었다. 안전한 2D로 만들자는 내부의 저항도 있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다. 리니지가 3D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유저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런 기대와 우려를 안고 엔씨소프트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

     

    “리니지 시리즈의 수명은 저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창조적인 일은 오픈 전에 모두 끝내고, 발표하는 순간 틀이 고정되어서 그 위에 혁신을 추구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안하면 망하는데요. 그런 변신을 게이머가 받아들여 준다면 오래가는 거고, 자칫 삐끗하면 수명이 끝나는 거죠”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리니지2를 초조하게 했던 것들!

    '리니지2'는 탄탄대로가 보장 된 게임이었다. 전작의 후광과 3D그래픽의 혁신은 유저들의 기대를 백프로 충족시켰다. 2000년 12월 경 개발에 들어간 리니지2는 2002년 동경게임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현장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3D 캐릭터의 화려한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탄을 자아냈다. 삼차원으로 구현된 대규모 공성전은 'MMORPG 혁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주변의 찬사와는 달리 엔씨소프트는 내심 초조했다. 3D MMORPG는 처음이라 그만큼 내부적인 시행착오도 많았다. 수백 명의 3D 캐릭터들이 한 곳에 모여 공성전을 펼친다? 그 많은 오프젝트는 어떻게 감당하지? PC사양이 얼마나 높아야 하지? 과연 그게 가능해? 내부 고민 외에 외부의 불안도 발목을 잡았다.

     

    블리자드가 비슷한 종류의 3D 온라인게임을 만든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그래픽은 자신 있는데, 문제는 스토리였다. 리니지2는 원작 만화의 이름은 이어 받았지만 내용은 별개다. 엔씨소프트도 리니지2부터는 만화 원작의 스토리와 선을 그었다. 리니지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종족의 전쟁을 다뤘지만, 단지 배경 스토리일뿐 스토리 자체가 유저들을 매료 시키진 못했다.

     

    <리니지2 필생의 라이벌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결국 와우를 넘지 못했지만 차기작 아이온이 그 소원을 대신 이룬다>

     

    당시 '리니지2'의 경쟁작은 국산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다. 경쟁의 무대는 이미 세계시장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상대는 해외 유명 게임들이다.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온라인’, SOE의 '에버퀘스트2' 등 글로벌 브렌트와 맞붙어야 한다. 인지도, 그래픽, 게임성 부분에서 하나 같이 만만찮은 라이벌들이다.

     

    특히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와우는 태생부터 방대한 콘텐츠와 스토리가 보장 된 게임이다. 전작인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이어 받아 분명 장대한 온라인 판타지 세계를 펼쳐보일 것이다.

     

    배재현 전무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리니지2 출시를 좀 더 연기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와우의 출시가 그처럼 지연될 줄 알았다면 보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출시를 늦췄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캐릭터의 점프가 가능하게 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네요”. 쟁쟁한 경쟁자를 만난 만큼 부담감도 남달랐다. 여기서 리니지2는 또 한번 모험을 감행한다.

     

    청소년 유해게임과 대통령상, 혁신의 시작!

    사실 '리니지2'와 '와우' 중 어떤 게임이 혁신적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리니지2'라고 말한다. 와우는 잘 만든 게임이지만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개발자들이 컨트롤하는 구조다. 채팅하고 파티 맺어 사냥하는 것만 다를 뿐 게임 방식은 일반 싱글 RPG와 비슷하다. 그러나 리니지2는 각 서버마다 스토리가 제각각이다. 개발사는 게임의 스토리 텔링을 유저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본질부터가 다른 게임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모험이었다.

     

    김택진 대표는 “서양 사람들이 보면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가 난장판에 가까울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문화가 한국 게임에서도 마찬가지 코드로 적용되는 것 같다”며 “리니지2는 자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제공하지 않는, 사용자들이 시나리오를 만드는 세계를 꿈꾸며 개발한 게임이고, 와우는 시스템적으로 멋진 게임경험을 심어줄 수 있는 쪽으로 발전된 게임”이라며 두 게임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리니지는 '에피소드', 리니지2는 '크로니클'이라는 주제로 콘텐츠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2003년 7월, 리니지2가 오픈했다. 게임은 오픈 하자마자 각종 이슈를 몰고왔다. PC방 불매운동에 부딪혔고, 폭력성과 선정성을 이유로 청소년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19금 사유가 가관이다. 마우스 각도에 따라 여자 캐릭터 치마 속 속옷이 보인다는 어이없는 이유에서다. 아이템을 습득하기 위해 상대 캐릭터를 죽이는 PK 행위를 폭력성으로 치부했다.

     

    리니지2는 오픈 일 주 만에 동시접속자 5만 5천명을 돌파했다. 예상된 성공가도다. 그해 12월엔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청소년불가라는 '낙인'과 '대통령상'이라는 '훈장' 동시에 얻었다. 지금이야 웃어넘길 해프닝이지만, 당시 온라인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그랬다.

     

    2008년 그레시아 업데이트 때 최대 동접자 15만 명을 돌파했다. 리니지가 이루지 못했던 해외수출 쪽도 활발했다. 2004년 미국을 시작으로 대만, 중국, 일본, 미국, 유럽에 깃발을 꽂았다. 리니지2는 2011년 1분기 전 세계 해외누적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에 이어 리니지2까지 연타석 홈런을 쳤다.

     

    “한국의 MMORPG 리니지2는 게임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만들어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다.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사에 존재했던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을 출현시켰다”
                                                                             - 게임학 석학 에스펜 아세스-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 RVR의 시대를 열다

    리니지2의 흥행비결은 바로 '유저'에게 있다. 나는 리니지2 유저만큼 게임을 열광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이들은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밥상을 골라 먹는 대신, 스스로 밥상을 차려 먹었다. 누구는 그것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 하고, 누구는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리니지2는 유저들의 '욕망'을 펼칠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들의 욕망이 한곳에 모여 거대한 '디지털 서사'를 만들어냈다. 리니지2 유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실 초창기 '리니지2'는 '리니지'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리니지에서 억압 받았던 피지배 계층들이 마음 놓고 게임할 곳을 찾아 '리니지2'로 대거 이주했다.

     

    <리니지2는 크로니클3: 전란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마치 유럽 가톨릭 교회의 핍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던 청교도들처럼, 리니지2도 개척자의 입장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이라는 독립 국가가 건설되기 까지 수많은 희생을 치뤘 듯 ‘리니지2’도 초반엔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서버내 권력자에 항거한 '반왕 전쟁'이 3D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펼쳐졌다.

     

    국내 게임사에서 본격적인 RVR의 시대를 연 계기도 리니지2 부터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이인화 교수는 “초기게임 리니지가 1대 1 대인전 중심이었다면, 후기 게임인 리니지2는 혈맹대 혈맹의 집단전투가 중심”이라며 “집단과 집단의 관계, 개인과 집단의 관계 등이 복잡하게 전개되어...(중략) 기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회 현상들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리니지2는 오픈 후 ‘축9섭전쟁(9서버)’, ‘방송국혈맹의 멸망(5서버)’, ‘스피드혈과 일심동맹(4서버), ‘올포원 민중봉기(1서버)’ 등 굵직한 이야기들을 만들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유저들은 마치 현실의 역사처럼 게임 속 스토리텔링을 즐겼다. 그리고 2004년 6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바츠서버에서 벌어졌다. 그것은 게임 이야기라고 보기엔 너무도 방대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완성판이었다.

     

    <7년전 일어난 리니지2 바츠 해방 전쟁을 추억하며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아트컷>

     

    “이것은 단순히 바츠 서버가 아닌 향후 모든 서버(게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리니지2 전체를 위한 전쟁입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속에서 끊어 오르는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서버 해방전쟁에 내복단 일원으로서 참전했노라고...”
                                                    -리니지2 자유게시판에 오른 내복단 궐기호소문-

     

    그해 여름, 바츠서버 혁명으로 불타다 
    2004년 여름은 리니지2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시기다. MMORPG를 조금이라도 한 유저들은 리니지2에서 벌어진 ‘바츠 해방 전쟁’을 기억할 것이다.  게임속 피지배 계층들이 서버를 장악한 거대 권력자들을 몰아낸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리니지2' 뿐만 아니라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

     

    유저들은 소위 ‘내복단’이라는 시위대를 결성해 거대혈맹의 횡포에 대항했다. 고렙의 공격에 수없이 죽어나가도 끝까지 내복(캐릭터 생성시 기본 복장)만 걸치고 저항 한다고 해서 ‘내복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내복단은 '용의 계곡'에서 인간 바리케이트를 치고 거대혈맹을 상대로 시위를 계속했다. 당시 바츠서버를 주름잡았던 DK혈맹은 내복단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다른 게임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초유의 온라인 시민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이 사건은 온라인 게임을 하던 많은 유저들로부터 게임 내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최초이자 최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바츠 이야기는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됐다. 많은 매체에서 '사이버 세계의 시민혁명'이라 보도했으며, 학자들도 이 사건을 표본 삼아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연구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내복단, 바츠 해방 전쟁은 게임속 사건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다른 MMORPG들도 '바츠 전쟁'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쟁’과 ‘전투’를 위주로 한 RVR 콘텐츠가 이후 MMORPG의 필수 콘텐츠가 됐다. 물론 게임 자체의 흥행에도 크게 기여했다. 바츠해방전쟁 이후 리니지2 동시접속자는 10만 명을 돌파해 전작을 능가하는 수준에 올랐다.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리니지2'의 전성기가 시작 됐다.

     

    전쟁은 2004년부터 시작해 2006년까지 진행됐다. 2006년 5월, 전쟁의 주역인 DK 혈맹 총군주 아키러스(캐릭터명)는 혈맹을 자진 해산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연설문을 남겼다.

     

    "세상에도 선과 악이 존재하듯 리니지2 세계에도 선과 악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우리 DK혈맹은 과감하게 선보다 악을 선택했습니다. 악이 있었기에 선은 더욱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악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겠습니다. 또한 리니지2 최고의 전투혈맹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DK혈맹의 자진해산으로 3년간 계속된 '바츠 해방전쟁은' 숫한 이야기를 남긴체 막을 내렸다. 

     

    유저의 열정은 게임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끈끈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갔다. 리니지2는 유저들 사이에 숫한 미담을 남겼다. 한번은 리니지2 사용자 전씨의 어머니가 사고로 중화상을 입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수천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혈맹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2,400만원을 수술비에 보탰다. 이중에선 전씨와 게임에서 적대관계에 있던 혈맹들도 모금에 참여해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게임에선 서로 적이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게임을 하는 동지"라며 흔쾌히 모금에 참여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리니지2’의 한 부부 유저의 결혼식 이야기도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마비가 되고 사회생활이 어려워지자 남편의 신경치료, 정신건강을 위해 ‘리니지2’를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게임속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게 됐다. 이들의 어려운 사연을 알게 된 동료 게이머들은 부부를 위한 선물로 사이버 결혼식을 마련해 준 것이다. 결혼식날 이들 부부는 실제로 뜨거운 눈물을 흘려 주위를 감동시켰다.

     

    <새종족 카마엘이 추가 되면서 또 한번 리니지2 붐이 일어났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현상들을 유저는 물론 개발자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6년 E3게임쇼에서 김택진 대표는 “게임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조차도 유저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감히 예측하지 못하겠다”며 “바츠전쟁을 보면서 마치 게임이 스스로 살아 움직여 꿈틀대는 것 같아 전율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리니지는 여백이 많은 게임이다. 개발자가 비워둔 공백을 유저들이 채워나간다. 사람들은 그 여백의 공간에 자신들의 ‘이야기’로 색칠을 한다. 그래서 리니지2는 개발자와 유저가 함께 만드는 게임이다. 개발자가 콘텐츠의 기틀을 놓으면, 유저들은 그 안에서 스토리를 완성한다. '매출 1조원 달성', '동시접속자 20만명 돌파', '글로벌 시장 공략' 같은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유저들이 만들어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리니지2 8년을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공학적으로 만들어지지만, 결국은 감성적으로 몰입하는 게임’. 배재현 PD가 애초에 기획했던 의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2002부터 2004년까지 3년간, 한국 게임시장은 온전히 '리니지2'의 것이었다. 도무지 적수가 없었다. 2004년 겨울, 거센 '눈보라'를 헤치고 그 게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서서히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지난 6월 업데이트 된 파멸의 여신, 제 2의 론칭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것이 추가됐다> 

     

    “아이온이 나오기까지... 수면제를 먹고 자야 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리니지3의 좌절, 그리고 리치왕의 분노! 창업이례 절체절명의 위기가 왔다. 리니지3 프로젝트가 기술유출로 좌초되면서 창대했던 리니지의 영광은 일순간 재로 변하는 듯 했다. 게다가 시장의 주도권을 이미 천만제국 '와우'에게로 넘어갔다.

     

    ‘리니지 신화 무기를 잃다’, ‘늪에 빠진 한국게임, 2년 동안 흥행작 全無!’ 언론들의 비관론이 비수처럼 꽂혔다. 김택진 사장도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과연 위기의 엔씨를 구할 '구원투수'는 있는가? 다음 편에는 엔씨소프트 3대의 주인공 ‘아이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엔씨소프트는 아이온으로 확실한 흥행 메이커로써의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아이온이 나오기까지 또 한번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s ⓒ BetaNews.net


  • http://m.betanews.net/555188?rebuil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