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칼럼] 혹시 하드 있어요?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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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10-31 09:42:01

    올해 용산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유통시장은 무척 우울했다. 시장을 이끌 만한 좋은 소식은 없는데 고객들의 관심은 컴퓨터에서 점점 멀어졌기 때문이다. 제조사에서 아무리 강력한 사양에 멋진 디자인으로 무장한 제품들을 선보여도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모바일 기기에 마음을 빼앗긴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그나마 전통적인 성수기인 연말을 맞아 반전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태국 홍수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동안 신혼여행지로나 알고 있던 태국에 그렇게 많은 비가 내려 말 그대로 홍수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나, IT관련 회사들이 있었다는 것도 대부분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피해는 이로 인해 하드디스크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만수기와 겹쳐 최악의 상황이 우려되던 지난 주말을 무사히 넘기면서 사태는 조금 진정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장 10월은 물론 앞으로 몇 분기동안은 정상적인 가동은 어렵다는 말들이 현지를 방문한 제조사 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의 하드디스크 업체로 전체 공급량의 30%를 담당하는 웨스턴디지털에겐 아주 치명적인 듯 싶다. 태국엔 웨스턴 디지털의 공장 가운데 가장 큰 공장을 비롯해 이른바 주력 생산 시설이 집중된 까닭이다.

     

    태국에서 생산되는 웨스턴디지털 하드디스크는 전체 생산량의 약 60% 수준이다. 태국 공장을 정상화하는 데는 빠르면 6개월 늦으면 8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생산시설 정상화이고 물량 공급이 원활해지는 시점은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일부 시설을 침수피해가 덜한 2층으로 옮기고, 심지어 인근 말레이시아로 옮긴다고는 하지만 정상화 시점은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이번 홍수로 인해 업계 전체로는 하드디스크 생산량이 약 25-3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문제는 피해가 결코 웨스턴디지털 한 회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5인치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도시바 역시 전체 생산시설의 절반이 태국에 있고, 이 곳 역시 홍수가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 씨게이트는 태국에 있는 두 곳의 공장 모두 홍수에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씨게이트 역시 또 다른 피해를 입고 있는데 다름 아닌 모터를 비롯한 핵심 부품의 부족이다.

     

    하드디스크의 핵심 부품으로 스핀들 모터라는 것이 있다. 이 핵심 부품의 경우 니덱이라는 회사가 전 세계 물량의 약 70%를 생산한다. 이 회사의 주력 공장 역시 태국에 있다. 아쉽게도 이 공장 역시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해 공장이 침수 피해를 받지 않은 회사들 역시 제대로 제품을 생산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물량 공급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제품 값에 반영되는 모양새다. 10월 들어 태국 피해상황과 실제 공급 부족이 생기자 수입원들은 아예 하드디스크 유통을 중단한 상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새로운 제품의 공급은 물론 심지어 A/S 물량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성수기를 기대하는 용산 유통업체들은 물론, 안정적인 물량 공급이 필수적인 대형 제조사와 하드디스크가 필수적으로 쓰이는 DVR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가전회사들까지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하드디스크는 값이 문제가 아닌 수급이 가장 우선되는 시장으로 바뀐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이번 천재지변으로 인한 하드디스크 물량 부족이 SSD로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러기엔 SSD는 여전히 너무 비싸다. 같은 용량을 비교했을 때 약 15~20배 정도 차이가 나는 현실은 하드디스크 값이 2~3배쯤 올라도 선뜻 SSD에 지갑을 열기에는 역부족이다.

     

    더 큰 문제는 올해보다 내년 1분기에 물량 부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아직까지 재고가 있어 버티고 있는 대형 제조사들의 물량 부족이 심각해지고, 언제나 그렇듯 대형 제조사 위주로 우선 공급을 하는 부품 제조사의 관행이 깨지지 않는 한 당분간 하드디스크로 시작된 우울한 뉴스는 계속될 것이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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