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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넷 실명제, 이제 사망선고를 허하라!


  • 박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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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9-29 13:55:29

    인터넷 실명제, 이제 사망선고를 허하라!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행정부에서 실행한 국정에 대하여 하는 감사다. IT업계의 쟁점으로는 인터넷 실명제가 도마에 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는 최근 SK커뮤니케이션(네이트, 싸이월드)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근본 원인을 추궁했다. 바로 인터넷 실명제가 주범이라는 것.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것은 2007년 7월. 인터넷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여자 배우의 자살로 인한 여론 형성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국회서 통과됐다. 정부는 하루 방문자 10만 명 이상의 사이트를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 기반의 실명 확인을 의무화했다.

     

    그렇지만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 도입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지적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때 회원 실명 인증을 받고 보안 서버에 회원들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저장, 관리해야 하는 부분도 해당 사이트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싸이월드' 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인터넷 실명제 폐지여론이 불붙고 있다. 이 사태로 3500만 명의 한국국민의 개인정보가 해킹당했다. 한국 성인 전부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줄줄 샌 개인 정보는 국경없는 인터넷 공간을 떠돌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국제 공공재'가 되었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감에서 김을동 의원은 이렇게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정보도 유출됐다. 이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위원, 국회의원 대부분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고, 나와 보좌진 개인정보도 유출되었다." 전혜숙 의원은 "악성댓글을 방지하기 위해 실명제를 도입했지만 이 때문에 모든 국민들의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 전국민이 이제 더 이상 털릴 정보가 없다고 푸념하는 상황"이라며 "인터넷 실명제 폐지에 대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책임부서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최시중 위원장은 "인터넷 실명제를 다시 검토해야 할 그러한 환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관계 당국과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이런 변화가 다행스럽다.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는 해외의 유력 언론도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실패를 보라. 익명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반대, 내부고발에 필수적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멍청한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건 사실이지만 익명성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 이 신문은 “현실의 세계는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우며 익명의 개인들로 넘쳐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로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론대로라면 인터넷 실명제 실시 이후 분명히 줄어들어야 할 악플의 수는 거의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실명제 실시 후 악플은 겨우 1.7% 감소했다. 문제는 전체 댓글 수가 무려 68%나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악플의 차단 효과보다 커뮤니케이션 위축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주민번호 클린센터가 있다. 이곳에선 실명인증 가입된 사이트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도 이 글을 쓰기 전 확인해본 결과 무려 260건이었다. 내가 가입한 사이트가 왜 그렇게 많은지 의아할 정도다. 만약 누군가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금전거래를 하거나 범죄에 악용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특히 해커들은 컴퓨터에 대한 정보에 능통하기 때문에 해킹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도용해 각종 사이트에서 아이디 비밀번호를 만들어가며 어떤 일을 꾸밀지 상상이 불가능하다.

     

    실명제가 옳은지 익명성의 보장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가 최근 싸이월드 해킹 사태 이후 실명제 폐지로 급변하고 있다. 각 사이트들도 의무적으로 회원정보를 저장, 관리해야 하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실명제에 관해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익명으로 누구나 가입해 글을 쓰고 댓글을 달 수 있지 않은가. 인터넷 실명제, 이제 사망선고를 내릴 때가 되었다.

     

     


    베타뉴스 박명기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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