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칼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 김영로
    • 기사
    • 프린트하기
    • 크게
    • 작게

    입력 : 2011-08-22 09:19:32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마치 성경 말씀 같은 이 글은 실은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 선생이 '석농화원' 발문에 적어둔 것으로 요즈음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면서 새롭게 많은 이들이에게 깨우침을 주는 잘 알려진 문장이기도 하다.

     

    IT 칼럼에 뜬금없이 예전 분들의 글을 쓰는 것은 바로 이 글이 딱 어울리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른바 IT로 밥 먹고 사는 기자들은 정말 바빴다.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구글이 휴대전화의 대명사인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세계 최대의 PC제조업체인 HP가 그들의 PC사업부를 분사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IT전문매체는 물론 심지어 9시 뉴스에도 잘 보도되었고 다양한 해설기사도 나왔으므로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조금 시선을 달리해서 왜 HP는 PC사업을 포기했을까보다는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를 한번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이번 뉴스의 주인공인 다름 아닌 레오 파포테커이다. 그는 작년 11월 독일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인 SAP에서 영입되었다. 달리 말하면 태생부터가 HP와는 조금 다르다.

     

    <지금 HP로고에는 Invent라는 단어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HP는 지금이야 PC와 서버, 그리고 무엇보다 프린터로 잘 알려진 회사지만 실제로 그 처음은 분석기기나 전자저울 같은 회사로 시작한 벤처기업의 대명사다. 휴렛과 팩커드라는 두 사람의 동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의 창업스토리를 읽어보면, 처음에는 혹시나 싶어 1층은 슈퍼마켓으로 임대하면서까지 나름대로 위험을 분산한 노력도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창업이래 HP는 하드웨어에 중점을 두었고, 이는 창업자부터 이어진 도전과 모험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기업이 커지면 이런 정신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방법도 달리하고, 시대에 맞는 옷을 새롭게 입기도 한다. 지난 2002년 컴팩을 인수해서 몸집을 불린 것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기 드문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를 거쳐 문제가 생긴 것은 전임 CEO인 마크 허드에 이르러서다. 그의 경영철학은 한마디로 짤순이 경영으로 불린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투자에 인색했다.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다른 어떤 기업보다 빠른 IT기업에서 투자를 줄인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 하는 것은 당장에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비용을 줄인 덕분에 좋은 실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몇 년이 지나야 그 문제점이 드러난다. 가까운 예로 스마트폰시대에 터치폰에 안주하면서 마케팅 비용은 늘리고 기술개발비용은 줄인 LG전자의 오늘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는 분기로 경영을 매듭짓고 나가는 이른바 주주경영시대의 또 다른 문제점이기도 하다. 아마 외국계 기업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P의 상징과도 같던 단어인 이노베이션을 없애고 마케팅과 세일즈에 집중하는 회사로 바꾼 것이 바로 마크 허드다. 정작 그래놓고 마크 허드 본인은 3류 여배우 출신과 성추문을 일으켜 해임되고 말았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정작 사랑해야하는 제품보다는 여인네 품을 더 사랑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그는 남다른 능력과 인지도 덕분인지 현재는 오라클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러한 마크 허드의 뒤를 이은 이가 바로 지금의 CEO인 레오 파포테커다.

     

    <이제 Web OS는 어떻게 될 것인가?>

     

    HP의 IBM따라 하기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이번 결정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야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도 하나 확실한 것은 자신이 파는 제품,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애정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하드웨어에 애정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단 한 제품을 내놓고 부진하다고 웹OS를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몇 백 년 전 조상의 말씀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Copyrights ⓒ BetaNews.net





    http://m.betanews.net/547500?rebuil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