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칼럼] 소비자도 공부해야 하는 시대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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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6-27 06:28:07

    얼마 전 신제품 도입을 위한 회의를 하는 도중에 조금은 황당한 일이 있었다. 그날 회의의 주된 주제는 요즈음 한참 인기 있는 태블릿(Tablet)에 관한 것이었는데, 영업 담당자가 “그럼 탭은 언제쯤 도입하는가”라고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영업담당자가 말한 탭이란 다름 아닌 S사 태블릿의 별칭으로, 이 담당자는 태블릿과 탭(Tab)이 엄연히 다른 제품군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수십 년 동안 IT관련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이가 이렇게 착각할 정도다.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포털 사이트나 관련 사이트에는 이런 내용으로 질문과 답변이 끊이질 않는다.


    정확히 잘 모르는 소비자도 문제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IT기업들의 마케팅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태블릿만 해도 회사마다 패드니, 탭이니 태블릿, 또는 터치패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소비자들의 혼란을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지고 보면 모두 하나같이 키보드 없는 PC일 뿐인데 말이다.

     

    그나마 태블릿은 나은 편이다. 대형 모니터와 TV 광고 등에 빠지지 않는 풀HD라는 용어는 또한 어떠한가? 기술적으로는 1080p를 말한다. 즉, 세로 해상도 1,080줄로 화면을 뿌려주고, 순차 주차(Progressive)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발한다. 여기에 조금 더 부가하면 화면비가 16:9의 와이드스크린이므로, 가로는 1920화소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한마디로 1920x1080의 해상도를 말하는 것이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풀HD라는 말은 없지만 워낙 탁월한 마케팅 덕분에 요즈음은 마치 풀HD가 해상도의 새로운 표준 정도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근본적으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기술을 쓴 제품을 알리고, 이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을 팔아야 하는 IT마케팅은 그래서 힘들다. 심지어는 만들어 파는 이들도 혼동할 때가 있을 정도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 속도는 무척 빨라 어떤 경우에는 기술이 먼저 개발되고, 이 기술로 제품이 만들어진 한참 다음에야 표준이나 규격이 정해지는 경우도 많다.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과학의 분야와 기술이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에 IT만한 분야도 없다.

     

     

    요즈음 4G에 대한 광고가 한창이다. 3G로 재미를 본 회사는 와이브로(Wibro) 4G라고 광고한다. 다른 회사는 LTE (Long term evolution)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4G라고 떠들어댄다. 아직 3G와는 달리 엄밀히 말해서 4G는 기술적인 표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이미 일부 회사에서 이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3G와 구분을 위해 4G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앞선 풀HD와 같이 이 경우에는 또 다른 마케팅 용어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디 그런 것이 풀HD와 4G같은 것만 있겠는가? 그래서 현명한 소비자, 옳고 그름을 잘 아는 소비자가 중요한 것이다. 소비자의 진정한 권리 역시 정확한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를 구분해내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왔으니 흔히 말하는 현명한 소비도 단지 돈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시대, 심지어는 기술을 꿰뚫어보는 정확한 눈이 있어야 된다. 이래저래 소비자들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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