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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특집-엔진편②] "엔씨에 자극 받는다"- 체밧 옐리 크라이텍 대표


  • 김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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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08-19 19:46:07

    에픽게임스 VS 크라이텍. 게임의 ‘심장’이라는 엔진 분야의 글로벌 양대 산맥이다. 언리얼의 에픽게임스는 FPS게임 개발로 명성이 높다. 크라이의 크라이텍은 극사실주의 표현으로 최고봉이다. 에픽게임스의 팀 스위니 대표가 ‘천재 개발자’의 대명사라면, 크라이텍의 체밧 옐리 대표(35)도 개발자들 사이에서 만만치 않은 인기인이다.


    크라이엔진은 ‘파 크라이’라는 그저 한 게임의 엔진에서 글로벌 게임엔진으로 도약, 내로라하는 ‘명품’이 됐다. 터키계 독일인인 체밧 대표는 “상상하고 실행하라, 그리고 성공하라”라는 회사의 슬로건 아래 독특하게도 두 형과 함께 회사를 운영한다. 플레이포럼이 13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본사에서 창업자 체밧 옐리 크라이텍 대표를 만났다. 그는 CEO이기 전에 송재경과 ‘아이온’의 성공을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는 젊고 열정적인 게임 개발자였다.

     

                                   “Sie(당신)”이 아닌 “Du(너)”로 불리는 개발사 대표


    체밧 대표는 대표작인 ‘크라이시스2’의 출시가 내년 상반기로 확정되면서 점심시간에도 개발자들과 막바지 게임 테스트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수백 명이 일하는 회사의 대표인 동시에 현업 개발자였다. 피케 셔츠에 청바지, 스니커즈까지 가벼운 옷차림이 잘 어울렸다. 직원들도 그를 대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선임 개발자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독일어로 치면 존대어에 해당하는 “Sie(지: 당신)”보다는 “Du(두: 너)”로 그를 불렀다. 일반적인 독일회사에서도 흔한 상황은 아니다.


    체밧 대표는“어렸을 때부터 게임 개발을 시도했을 정도로 기술적인 혁신에 관심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게임 개발을 처음으로 했던 것은 12살. 그때까지만 해도 형제인 아부니, 파룩과 함께 게임회사를 운영하게 될 줄은 몰랐다.


    1996년부터 게임업계에 뛰어든 체밧 대표는 99년 본격적으로 회사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00년에 둘째 형에 해당하는 파룩이, 2001년에 맏형인 아부니가 합류했다. 현재 체밧 대표가 회사의 창조적 비전을 책임지고 게임의 기획과 프로젝트 총괄을 맡고 있다. 공동 대표로서 파룩은 회사의 내부 운영과 재무를, 아우니는 사업개발이나 사업전략 등 비즈니스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처음부터 함께 회사를 하자는 약속은 없었다”는 것이 체밧 대표의 설명이다. 옐리 형제들은 그 동안 공부했던 분야도 다르고, 성격도 서로 달랐다. 당시 파룩은 광고분야에서 일하고 싶었고, 아부니는 IT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꿈을 가진 형제들을 게임업계로 이끈 것은 막내인 체밧 대표였다. “내가 제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설득시켰다”


    현재 크라이텍은 각자가 맡은 분야가 확실히 나뉘어져 있다. 체밧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면 파룩이 관리와 운영을 맡고 아부니가 외부에 가져가 사업화시킨다. 손발이 척척 맞는 시스템. 공동창업자나 마찬가지인 이 형제들은 개발, 운영, 사업으로 나뉘어 회사를 고속 성장시키고 있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본사에만 약 300명이 일하고 있고 영국,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헝가리, 서울 지사를 통틀어 300명 가까이 일하고 있다.


    형제의 고향 코부르크를 떠나 인재의 중심 프랑크푸르트로

    회사가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게 된 것은 크라이시스 시리즈의 출시와 시기를 같이 한다. 옐리 형제가 고향 코부르크를 떠나 독일의 관문에 해당하는 대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자리잡은 것이 2006년. 크라이엔진2의 명성이 알려지고, 본격적으로 전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때다.


    “형제들이 태어나고 자란 코부르크는 작고 매력적인 도시다. 하지만 크라이텍이 더 이상 작은 회사가 아니게 되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인재가 필요했고 유럽에서 오고 갈 일이 많아지면서, 공항이 가까운 대도시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크라이텍이 게임 개발사로서 중앙 무대에 서게 된 시기다.


    ‘크라이시스’, ‘크라이시스 워헤드’의 출시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엔진 개발에서도 명성이 높아져갔다. 내년 상반기에는 최신 버전인 크라이엔진3로 개발된 크라이시스2도 출시된다.


    체밧 대표가 크라이엔진3를 개발하면서 가장 중심을 둔 부분은 범용성과 최적화였다. PC 기준으로 제작되었던 크라이엔진을 콘솔, MMO 등 다양한 플랫폼 기반으로 보다 확장시켰다. 저사양에서도 고화질의 그래픽을 쾌적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특히 초점을 맞춘 것은 MMO게임에서 세계의 구현이다. 크라이텍이 언리얼 엔진과 비교해도 자신 있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레벨’개념의 작은 지역보다는 보다 큰 환경에 해당하는 ‘월드’를 자연스럽게 구현한다는 것이 크라이엔진의 장점이다.


    게임의 미래는 온라인, 엔씨소프트에 큰 자극 받아


    체밧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게임의 미래는 온라인”이라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그는 에픽게임스나 블리자드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블리자드나 에픽게임스는) 존경하고 닮고 싶은 대상이지만, 그보다 내게 자극을 주고 관심이 가는 대상은 엔씨소프트나 밸브다.” 그는 “두 회사로부터 경쟁자 이상의 강한 자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라이텍은 우크라이나 지사에서 프로젝트W라는 가칭으로 미공개 온라인 게임을 개발 중이다.


    그는 “엔씨소프트는 이미 MMO에서 성공적인 개발을 이루어낸 회사이고, 밸브는 스팀 같은 서비스를 통해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온라인 서비스가 게임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며 “서양에서는 아직도 패키지 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확실히 유저들에게 더 가깝고 편리한 것은 온라인이다. 유저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온라인”이라고 강조했다.


    크라이텍이 아시아에서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아시아 시장을 향한 전진기지이자 인재 커뮤니티가 발달한 곳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송재경 대표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MMO 개발 분야에서도 리더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한국은 부분유료화처럼 비즈니스모델에서도 앞서나가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이동하려는 서양 개발사에도 많은 자극을 준다.”


    크라이엔진으로 개발된 ‘아이온’의 성공은 크라이텍에서도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결과였다. 크라이텍에서는 이전까지 “아시아 시장의 유저들은 게임에서 그래픽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PC, 콘솔 기반으로 만들어진 크라이엔진이 MMO에서도 잘 구현되는 것을 보며 스스로 입장이 바뀌었다.

     

                                          ▲ 크라이시스2를 플레이하는 체밧 대표  

    ▲ 프랑크푸르트 지역 신문에 나온 삼형제

    ▲ 한국지사에서 보내준 선물


    ‘디지털 마에스터’가 꿈꾸는 독일 명품 엔진


    체밧 대표는 한국에서 새로운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자극을 얻고, 동시에 자신들이 가진 기술이나 콘솔 개발로 쌓은 프로세스를 전수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크라이엔진을 구입한 한국 회사가 발표하지 않은 곳을 포함해서 이미 10군데 정도이며, 이외에 10군데 정도의 회사가 현재 구입의사를 타진 중이다.”


    체밧 대표는 크라이텍을 단순 엔진판매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무조건 크라이엔진을 쓰면 게임을 잘 만들 수 있다는 인식도 잘못 되었다.


    그는 “엔진을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크라이엔진으로 얼마나 고퀄리티의 게임이 만들어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크라이엔진으로 더 좋은 게임을 만들도록 돕는 것이 크라이텍의 역할이며, 그 과정을 통해 상호 발전이 이루어진다. 현재도 엔진 판매가 이루어지면 해당 개발사의 직원이 약 3개월간 프랑크푸르트 본사로 와서 직접 파견교육을 받는다.


    한글 매뉴얼 작업이나 한국지사를 통한 지원정책뿐만 아니라 학교를 통해 무상으로 엔진을 제공하여 교육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 BMW의 역사는 항공기 엔진 개발에서 시작됐다. 고급 브랜드의 대명사 메르세데스 벤츠의 철학은 “최고급이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다. ‘마에스터(장인)’에 탄생돼 가족과 형제로 대물림된 이들의 철학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명품’을 만들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게임개발사 크라이텍의 역사와 정신도 이와 같다.


    ‘파 크라이’개발에서 출발한 이 회사의 역사는 크라이텍을 10년만에 세계 최고의 엔진 개발사로 자리잡게 했다. “상상하고 실행하라, 그리고 성공하라”는 이 회사의 슬로건이다. 이제 크라이텍은 독일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품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김명희 (플레이포럼) <playforum.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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