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반도체 지존 인텔,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 이덕규
    • 기사
    • 프린트하기
    • 크게
    • 작게

    입력 : 2009-12-07 17:05:11

    “나는 스승님이 싫어요!!”  인텔 창업과 8인의 배신자

     

    글/ 잼아줌마


    ‘실리콘 벨리’가 시작된 1955년 이후 50년 동안 세계 IT산업은 엄청난 발전을 일구어 왔습니다. 전 세계 컴퓨터의 황제로 군림한 인텔을 시작으로 AMD, 엔비디아, 애플, IBM 등 수많은 거대업체들이 경쟁과 화합을 반복하며 산업을 성장시켰습니다. 베타뉴스가 기획한 새코너 'IT업계 블랙박스'에선 IT 기업들의 재미있는 과거사를 낱낱히 공개합니다.

     

    ▲ 반도체 산업의 거성 인텔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답니다^^;;

     

    1부. 실리콘 밸리의 거성 인텔편

     

    인텔이 컴퓨터 업계에서 ‘지존’이란 데에 이의가 없을 겁니다. 인텔 CPU는 더 이상 경쟁자가 없을 만큼 세계 컴퓨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인텔의 연구소에선 UFO를 뜯어 CPU를 만들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최근 인텔의 기술력은 하늘을 찌를 기세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렇듯 인텔도 숨기고 싶은(?) 과거사가 있으니… 오늘 이 시간에는 초거대기업 인텔의 과거를 통해 우리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 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스승님이 싫어요!!” 인텔 창업과 8인의 배신자?

    먼저 인텔의 창업스토리를 소개해볼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텔은 그 자체가 IT 산업의 역사입니다. 인텔의 창업스토리는 마치 무협소설을 방불케 합니다. 업계 최강 고수를 스승으로 둔 제자, 그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배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과거의 인텔을 논하는데 ‘8인의 배신자’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이 바로 인텔과 AMD의 기초가 될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해 실리콘 밸리의 기틀을 닦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8인의 배신자’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1950년대 8명의 공대생들은 노벨상 물리학상 수상자인 쇼클리가 특별히 영입한 수제자였습니다.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천재적인 물리학자였죠. 당시 벨연구소(전화기를 발명한 벨이 창립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쇼클리는 반도체 사업의 가능성을 읽고,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합니다.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는 지금 실리콘 밸리의 효시가 되죠. 그런데 거리가 문제였습니다.

     

    동부에 있는 벨연구소에서 미국 서해안 끝에 있는 쇼클리 연구소까지 옮기려는 직원이 없었습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도 공무원들이 ‘가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미국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데 오죽하겠습니까.

     

    ▲ 윌리엄 쇼클리, 실리콘 밸리의 효시인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 세웠다. 이곳 출신의 젊은 공학도들이 훗날 인텔과 AMD를 창립했다

     

    결국 거리 때문에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로 이직하려는 직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쇼클리는 별 수 없이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8명을 가려 뽑아 데려갑니다. 이 젊은이들이 이후 인텔과 AMD의 창업자가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죠.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모인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는 과연 성공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했죠. 쇼클리가 특별 영입한 8인은 1년 만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뛰쳐나와 버립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나는 스승님이 싫어요’라는 말과 함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쇼클리의 성질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괴팍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비서가 문을 열다가 압정에 찔렸다고 “회사 내에 스파이가 있다”고 난리를 칠 정도며, 회사 게시판에 월급을 많이 받는 순서(물론 맨 위에는 쇼클리)를 뽑아서 붙여놓을 정도니 쇼클리의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고초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결국 쇼클리가 심혈을 기울여서 뽑았던 최고의 공대생 ‘8인’은 1년 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인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합니다. 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후에 인텔과 AMD를 낳습니다. 쇼클리는 이들을 ‘8인의 배신자’로 부르면서 분통을 터트렸지만 이미 배는 떠나버린 후였습니다.

     

    ▲ 인텔의 창업자 고든무어 회장. 그는 쇼클리 연구소를 나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다. 인텔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후 1968년, ‘8인의 배신자(?)’ 중 2명인 고든무어(‘무어의 법칙’할 때 그 무어 맞습니다)와 로버트 노이스는 ‘INTegrated ELectronics Corporation’ 이라는 좀 긴 이름의 회사를 설립합니다. 줄여서 INTEL – 인텔이라고 부르죠. 실리콘 밸리 전설의 시작인 인텔의 출발이었습니다. 그 뒤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반도체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편,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는 어떻게 됐을까요? 쇼클리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핵심직원이 모두 떠나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문을 닫게 됩니다. 한 때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모였던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의 자리에는 이제 표지판 하나만이 덜렁 남아 이곳이 실리콘 밸리 최초의 반도체 연구소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성질 더러운 상사 밑에는 절대 일 못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남긴 체 말입니다.

    ‘산수도 못하는 컴퓨터 ?’ 펜티엄 오류사건의 전말

    우리가 ‘컴퓨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수학을 잘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사람의 머리로 하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계산을 컴퓨터는 몇초만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의 계산이 사실은 틀린 계산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모든 물건이 그렇듯 컴퓨터 CPU도 완벽한 물건이 아닙니다. 얼마 전 벌어졌던 ‘AMD헤카’(트리플코어 CPU인데 고의로 코어 하나를 강제 복구하면 쿼드 코어가 된다!)사태도 그렇고, CPU에 결함이 있어서 교환하고 패치 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이 일반 소비자에게 알려지면 어떤 파장이 올까요. 당연히 CPU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떨어지고, 회사는 엄청난 피해를 입겠지요. 그런 자살행위를 한 기업이 하나 있었느니…, 그게 바로 인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인텔은 물론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팬티엄 오류사건의 전말은 사소한 오해서부터 시작합니다.

     

    ▲ 1994년 세계를 강타한 팬티엄 오류사건. 인텔은 사소한 실수로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1994년 여름, 인텔의 팬티엄이 전성기를 구가할 당시입니다. 우연히 수학자 한 명이 펜티엄칩에 연산버그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펜티엄으로 연산을 할 때 정확하게 맞지 않고 486과는 다른 해답을 내놓다는 겁니다. 이 수학자는 인터넷에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알렸고, 인텔에서는 당황한 나머지 이 수학자에게 수석 연구원 자리와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버그를 숨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인텔은 자기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인터넷에 한 번 올라온 정보는 사라지기는 쉽지 않은 법. 곧 ‘신형 인텔 CPU(펜티엄)에 문제가 있다’라는 소문이 인터넷 전체에 퍼져 인텔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갈수록 퍼져갔습니다. 수학자나 컴퓨터 엔지니어 같은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왜곡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 인텔 린필드 코어 I5 CPU, 이런 강력한 물건이 나올때까지 인텔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인텔로서는 위기일발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극히 낮다’라며 버티다 이후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두 바꿔드리겠습니다’로 정책을 변경하면서 유저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어버렸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문제가 일어난 연산 버그는 일반인 입장에선 그리 중요한 버그도 아니었습니다. 인텔의 주장대로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극히 낮았습니다. 그 방면 전문가들이나 ‘이런 게 있네’하는 정도의 사소한 오류였죠. 하지만 지례 겁먹은 인텔이 사실을 숨기기만 하면서 일이 커져버린 겁니다.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인텔은 결국 자살골을 먹습니다. ‘내가 산 상품에 버그가 있으면’ 무조건 불쾌해하는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대응과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산수도 못하는 펜티엄 칩’이라는 오명을 안고 엄청난 손해도 입게 됩니다.

    인텔과 AMD의 ‘5년 전쟁’, 상처뿐인 영광!

    앞에서 언급했듯 업계 최대 라이벌 인텔과 AMD는 사실 한 뱃속에서 났습니다. 쇼틀리 연구소에서 나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만든 공학도들이 각각 인텔과 AMD를 설립했죠. 그러나 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우기 일쑤였죠. 인텔과 AMD의 불편한 관계는 5년간 법정투쟁에서 폭발합니다.

     

    ▲ 지난 5년 동안 인텔과 지리한 법적 투쟁을 펼쳤던 AMD. 마음 먹고 독하게 덤비는 AMD의 집요함에 인텔도 혀를 내둘렀다 

     

    지난 11월 13일 인텔과 AMD가 벌여온 5년간의 법정투쟁이 끝났습니다. 인텔이 AMD에 12.5억 달러를 지불하면서 AMD가 인텔에 걸었던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이번 소송은 인텔의 리베이트 정책에 문제가 있다며 AMD가 48장에 이르는 고소장을 미공정거래 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인텔은 자사제품을 구매 하면 일정금액을 구매회사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이게 AMD의 심기를 건드린거죠. AMD는 인텔에 반독점 위반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 숫한 법적 공방을 계속했습니다. 그동안 인텔은 전 세계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말 그대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됩니다).

     

    인텔과 AMD의 분쟁은 두 회사 모두 ‘상처뿐인 영광’만 남겼습니다. 인텔에게서 12억 달러를 받아내면서 소송을 취하한 AMD도 편한 기분은 아닙니다. 인텔에게 거의 멱살잡이를 하다시피 해서 거액의 보상금을 얻(뜯)어 냈지만 AMD의 적자행진은 12분기 째 계속되고 있고, 법정에서 승리하는 동안 시장에서는 연전연패를 거듭했습니다.

     

    현재 CPU시장의 AMD 점유율은 20% 안팎입니다. OS시장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조금 높은 수치로, AMD는 소송 기간 동안 인텔에게 크게 밀린 상태입니다.

     

    ▲ 해외 인터넷 사이트 올라온 인텔과 AMD간의 법적분쟁을 풍자한 그림. 둘 다 상처뿐인 영광만 남겼다

     

    인텔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보상금 12억 달러가 아깝기 보다는, 자신들의 상대가 안됐던 AMD가 독기를 품고 덤빈 사실에 ‘화들짝’ 놀랐을 것입니다. AMD가 목숨 걸고 덤비면 거대기업 인텔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못하면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AT&T’ 사건처럼 독점기업 판결을 받아 회사가 여러 개로 쪼개지는 사태를 맞을수도 있습니다. (AT&T는 60년대 미전역의 전화통신을 독점한 기업으로 정부로부터 독점기업으로 판명되어 회사가 여러 개로 쪼개졌다.) 비유하자면 삼국시대 가장 막강한 고구려가 신라에게 땅을 내어주고, 휴전조약까지 체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번 싸움에서 AMD는 ‘실익’을, 인텔은 ‘명분’을 챙겼다는데 양사가 만족해야 했습니다. AMD는 경쟁 기업인 인텔로부터 막대한 금액을 얻어내는 ‘쾌거’를 이루고, 라이센싱 협약까지 맺음으로서 12분기 연속 적자행진에 종지부를 찍을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인텔은 경쟁기업에 보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자신들이 ‘독점기업이 아니다’라는 명분을 얻어 앞으로 자유로운 마케팅 활동이 가능해 졌습니다.

     

    한편 20세기 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끼워 팔다가 반독점 소송을 당했던 MS는 자신들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인텔의 반독점 소동에 팔짱을 끼고 비웃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정말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 그런데 이건 왠일? AMD에 이어 엔비디아가 맞소송을 제기하면서 인텔은 또한번의 긴 법적분쟁의 터널로 들어가게 됐다


    베타뉴스 이덕규 (press@betanews.net)
    Copyrights ⓒ BetaNews.net





    http://m.betanews.net/479776?rebuil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