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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하이브리드 소설 Chapter.1 그리움 - 제2화


  •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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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09-05-15 14:58:41

     

    HYBRID/ Nostalgia Whisper. / Chapter.1 그리움(Nostalgia) - 제2화


    잠시 동안. 그레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4원소의 정령도, 천공의 정원에 있는 자 들도. 그를 따라서 갑자기 침묵해졌다.
    그레이는 다시, 자신의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었다. 뭔가의 회상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 대한 그의 그리움' 이였다. 정령들도, 대장장이도, 엔트리스도, 메신저도, 오레아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않았다.


    "살아...있겠지?"


    그림에서 눈을 때지 못한 채.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그레이가 말하자, 더더욱 그들은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느낌이었다. 위로의 말도, 그 무언가의 말도 그의 기분을 풀어주지 못할 듯 하였다. 그레이의 모습은 여느 때 보다도, 더욱 그리움에 사무친 모습이었다.


    "살아 있을지도...."
    "...응?"


    중력구가 녹색의 빛을 띄우더니, 실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의 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레이는 뭔가의 위안을 얻었다.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예 알 필요도 없으며,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그는 그 순간의 위안이 맘에 들었다. 그의 마음은 어느새 차차 진정되어가고 있었다.


    "....고마워. 실프. 덕분에, 마음이 진정된 것 같아.."


    그레이의 표정은 한결 나아진 표정이었다. 허나, 그림에서는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실로, 그는 진정이 많이 되었지만, 줄곧 그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꽤나 많은 감정들이 그의 마음 속에서 교차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그레이가 회상에 잠기려 하는 그 순간.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천공의 정원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공의 정원이 흔들릴 정도라면, 그것은 대륙의 지진이 아니었다. 이 지진은 '세계의 흔들림'이었다. 하지만 그 지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윽고, 흔들림이 점차 멈추기 시작하였다.


    "뭐지... 이 흔들림은? 보통의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나가보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레이!!!"


    이번엔 중력구가 붉게 빛나며 샐래맨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샐래맨더는 이번엔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을 내놓은 것 같았다.


    천공의 정원을 나와, 차원의 봉우리. 내려다 본 대륙은 그다지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수중 화산이 터진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뭔가의 파괴와 같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안심하려는 순간. 대륙의 한 부분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연기를 보고는 그는, 직감적으로 그 곳을 향했다.


    "뭐야.... 이건...."


    발은 딛자마자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 그리고 한없이 타오르는 집들, 검은 연기들. 뭔가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 근처를 배회하는 패퇴한 카오스들의 소행은 아니었다. 그들은 불을 사용하는 법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화염'을 다루는 '누군가'의 소행이었다.


    "이.... 곳을.... 벗어... 나...."


    누군가 그레이의 발목을 잡았다. 놀란 눈으로 본 아래. 젊은 사내가 잡고 있었다. 귀를 대어보니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그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를 살려주기 위해서. 그 순간만큼. 그레이의 심정은, 꼭 살려야만 한다는 심정이었다.


    "이봐요, 눈 좀 떠 보세요! 이봐요!!!"


    이윽고, 그가 짧고 굵은 기침을 뱉어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살아있긴 했어도, 숨을 쉬는 것도 굉장히 벅차 보이는 사내였다.
    점점 꺼져가는 생명을, 그레이는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의 생명이 다하기 전에. 그는 젊은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 누구의 소행이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


    그레이의 다급한 목소리. 하지만 그는 숨을 쉬는 동안에도 괴로운 표정으로, 줄곧 마른 기침을 뱉어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레이는 기다렸다. 대답을 듣기 위해서 그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죽더라도. 그는 사내를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몇 번 인가. 그가 마른 기침을 더 토해내더니, 이윽고 입을 때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나도 힘겨워 보였다.


    "그...들... 그들이... 그들이... 그들이.. 돌아왔다. 아악...크어억..커헉!.. 카... 카오..스... 그... 어..크하악!!!.. 어둠의... 자식들이!!!
    크커어억!... 으윽... 그들이... 그들이.. 돌아왔다고 오옥!!!! 으커컥...커헉.."


    마지막 발악을 하듯, 사내가 외쳤다. 그리고 몇 번의 고통스런 마른 기침과 함께,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레이의 표정은 너무나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오스들은 이미, 그가 '1년 전'에 페어리와 함께 거의 소탕했다.
    최종적으로 '제네시스'를 쓰러뜨림과 동시에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내가 말했다. 카오스. 그 어둠의 자식들이 다시 돌아왔다.


    "말 도 안돼.... 그럴 리... 없어..."


    이미, 그레이의 표정은 넋이 나갔다. 샐래맨더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레이는 불에 타며 쓰러지는 나무에 깔릴 뻔 했다. 불타는 나무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릴 뻔 한 것이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레이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충격이 꽤나 큰 모양이었다. 그런 그레이의 모습에 이윽고 샐래맨더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크하악!!! 그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이 바보 녀석아!!!!! 죽고 싶은 것이냐!!!!"
    "아..."


    그때서야. 그레이는 정신을 차렸다.실프와 운디네가 불을 끄는 동안. 그레이는 혼잡한 머릿속을 정리 중이었다. 모든 일이 예고 없이 일어나는 건 맞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레이는 여전히 정신이 혼미했다. 그 때. 실프와 운디네가 그들 부르기 시작했다. 그레이는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레이. 불 다 껐어."
    "아, 고마워... 자. 그만 중력구 속으로 들어와. 이제...시작인가..."


    그가 말을 꺼내다가 무섭게, 카오슬의 무리들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레이 역시 검을 집었다.
    그레이가 검을 잡음과 동시 에, 카오스들이 뛰어올랐다. 그레이 역시 정령의 힘을 빌려 그들과 싸워나가기 시작했다.


    털썩. 마지막 남은 카오스가 쓰러졌다. 카오스가 쓰러짐과 동시에, 그레이는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눈 앞에는 칠흑의 머리를 가진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레이가 잘 아는 사내. 그가 바로 '제네시스'였다.


    "제네시스! 어떻게 당신이!?"


    그레이의 목소리를 들을 제네시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여유로운 미소까지 걸쳐져 있었다.
    그레이는 위협을 느꼈다. 전에 싸웠던 제네시스와 다른 분위기. 하지만 제네시스는 맞다. 그레이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제네시스를 닮은 또 다른 누군가 인가?' 하고 말 도 안되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레이.. 이전에는 날, 잘도 '카오스' 속으로 빨려 들게 했더구나... 그래.. 갚아줘야겠지...
    그런데, 네 곁에 '데져리쉬'가 없군? 아깝군... '데져리쉬'에게도 갚을 빚이 있는데... '데져리쉬'의 몫까지 받아가거라.... 크흐흣... 잘도 날 카오스 속으로 빨려 들게 했겠다...
    내가 카오스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난 널 죽여주마..."


    제네시스가 말을 마치자마자, 검을 뽑아 곧장 그레이에게 내리쳤다. 하지만 그레이의 검과 맞부딪치며 격렬한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그레이는 굉장히 버거워 보이는 반면, 제네시스는 여유로웠다. 슬슬 그레이는 느꼈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그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깨닫는 그 시간이 늦었을 뿐. 그는 알아차렸다.


    "이제 그만, 죽어 버려랏!"


    제네시스가 그레이의 검을 밀쳐 내고는, 재빨리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레이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옷만 살짝 베어졌다.
    그저, 칼만 맞대고 있었을 뿐 이였는데도, 그레이는 힘을 거의 다 소진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작 몇 분 사이에 그의 칼날이 상해 있었다.
    지난 날에 있던 그 싸움에서도, 상하지 않던 칼날이 고작, 이런 것에 상할 정도로. 제네시스는 강해져 있었다.


    "운이 좋아서인가..? 뭐, 그것도 지금이다."


    그는 검을 올려 들지 않았다. 그냥 일격으로 바로 찔려 버렸다. 하지만 찌르고 난 뒤. 감촉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단단한 무언가를 찌른 듯한. 그냥 처박은 듯한 느낌. 그리고 떠올렸다. 이 감촉을. 낯익은 이 감촉. 이 감촉은 '데져리쉬의 절대방어'와도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데져리쉬'가 서 있었다. 그 때와 같은 비정한 표정으로..


    "페... 페어리!?"
    "이런 젠장, 데져리쉬!!"


    제네시스는 놀라는 표정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데져리쉬가 존재하는 그레이에게는, 자신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제네시스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놀란 것은 제네시스 뿐만 아니었다. 그레이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럴 때. 페어리가 뒤를 보기 위해 돌아보았다.


    "페... 페어리? 너.. 페... 페어리지? 그치!?"


    그녀는 대답대신, 웃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미안함이 가득한, 슬픈 웃는 표정. 그것을 보는 순간.
    그레이는 그녀를 잡기 위해 재빨리 일어났다 그 때 '지키지 못했던 표정'을 잡기 위해서. 꽈아악..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는 이미, 분홍빛의 가루가 되어 대기를 향해 흩날리며 사라져갔다. 완전히 소멸하기 마지막 전. 그녀가 보여준 미소. 지키지 못했던 미소였다.


    그 때, 그레이는 울었다. 울분을 토해냈다. 눈물을 통해서. 하지만 지금의 그레이는 그 감정을 꾹 눌렀다. 애써 억누르려고 그는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먹을 강하게. 더더욱 세게 쥐었다. 그는 주먹을 강하고 강하게 쥐는 것으로, 애써 그 울음을 대신하려고 하고 있었다.


    석양은 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소년의 진하디 진한 슬픔을, 석양은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위로해주고 싶었던 걸까?'잡고 싶어도. 지키고 싶어도. 붙잡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을


    3화에서 계속...

     


    베타뉴스 이승희 기자 (cpdlsh@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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