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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화 기여 보람...1세대 헝그리정신 잊지 말았으면”..월드옥타 美 홍보전문가 비비안리 [줌人]


  • 유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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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23-04-24 21:28:59

    ▲ 비비안리 원썸커뮤니케이션 대표가 지난 20일 도쿄 신주쿠구 게이오플라자호텔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타뉴스
    [베타뉴스/도쿄=유주영 기자]  지난 2011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렸던 패션쇼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는 미국에서 조선 왕실의 의복을 선뵌 최초의 이벤트로, 당시 미국 사회에서도 대중적 이목을 끌었던 대규모 한국 문화 행사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국가적 역량을 쏟아 기획돼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는 물론, 한국의 톱배우들이 왕과 왕비로 직접 등장해 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이 행사의 홍보를 맡았던 장본인인 비비안리(Vivian Lee, 58) 원썸커뮤케이션 대표를 월드옥타 제24회 세계대표자대회가 열리고 있는 일본 도쿄 스미토모빌딩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개인적인 성공이나 부의 축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가 주력을 두고 있는 식품 및 화장품 분야 홍보를 통해 고국을 알리고 모국의 기업을 미국에 진출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비비안리 대표는 천상 '홍보맨' 그 자체였다.
     
    미국 뉴저지에서 PR마케팅회사 '원썸커뮤니케이션'을 경영하는 비비안리(58) 대표는 재미 한인 중 드물게 PR 분야에서 수십년을 일한 보기 드문 커리어의 소유자다.
     
    그는 30년전 한국의 홍보회사에서 일하다가 많은 기회를 포기하고 남편과 함께 갑작스레 뉴욕행을 택했고, 이국 땅은 낯설기고 막막하기만 했다.
     
    뉴욕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된 남편과 달리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했던 비비안리는 뉴욕 구인정보지를 들추다가 한국계 PR회사 '강&리'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그곳을 찾아나섰다. 다행히 그는 한국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무사히 합격했고, 그이후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당시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대부분 육체노동에 종사하며 '아메리칸드림'을 일구어가던 시기라,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공부하지도 않은 비비안리가 이민 생활 초창기부터 화이트칼라로 일한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비비안리 스스로도 낯선 땅에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 비비안리 대표가 지난 19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스미토모빌딩에서 열린 월드옥타 수출상담회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타뉴스
    한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비비안리는 대학 동기들이 졸업 후 은행, 대기업 등을 택한 것과 달리 일찌감치 PR로 눈을 돌렸다. 학부시절부터 글로벌 기업 IBM에서 파트타임으로 홍보일을 곁눈질 했던 비비안리는 PR이 천성에 맞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당시 국내 16개 밖에 없던 홍보회사 중 하나인 '나라기획'에 입사했다. 
     
    당시는 88 서울올림픽 직전으로, 한국에서 광고홍보의 황금기가 시작되고 있던 시기였다. 홍보회사에서 일했던 비비안리는 밤새도록 올림픽 광고를 찍고 현장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홍보 개념이 전무하던 30여년전 스타커뮤니케이션의 설립자 조안리 등  몇몇 한국의 홍보전문가들과 함께 국내 최초로 'PR협회'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언뜻 화려해보이기도 한 직장 커리어를 포기하고 미국에 온 것에 대해 비비안리는 "당시로서는 급한 결정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해외에서 고국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미국에서 PR전문가로 수십년을 일한 그가 장기로 내세우는 분야는 식품과 화장품 홍보의 두 분야로 크게 나뉜다.
     

    ▲ © 베타뉴스
    이명박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한식 세계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했고 비비안리 대표는 이 흐름을 타고 한국 음식을 미국에 소개하고 홍보하는 한편, 한국식품기업의 진출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클라이언트는 한국의 농수산물유통공사(aT), 뉴욕총영사관, 코트라 등 굵직한 공공기관들이었다. 비비안리 대표는 한국의 공기업, 공무원들과 함께 노력했고, 김, 쌀과자, 떡  등 미국인들에게 생소하기만 했던 음식이 그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아래서 미국 시장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의 유명 요리학교인 CIA 교수진의 쿡북에 한식 레서피가 실리기도 하고, 검은 종이를 먹는다고 오해 받던 한국의 김은 오늘날 미국 수출 효자상품이 됐다. 중국 덤플링만 알던 미국인들에게 '만두'를 알린 것도 비비안리의 자랑꺼리다.
     
    초창기 미국에서 잘 안팔리던 곤약젤리를 이너뷰티를 아이템으로 하는 카페를 통해 소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히트치기도 했다. 비비안리 대표가 밀었던 이 제품은 코스트코 부사장 회의에서 통과돼 입점 후 수입가 기준 44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피치, 망고. 레몬 등의 다양힌 플레이버를 젤리에 넣어보자는 그의 아이디어가 적용된 결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월드옥타 24회 세계대표자대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과 월드옥타 회장상을 받기도 했다.
     
    MB정부 이후 한식세계화 열풍이 한풀 꺾이고 홍보사업이 줄어들 무렵인 2014년 비비안리 대표는 월드옥타 뉴저지지회의 각종 행사를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옥타 회원이 됐다. 그는 옥타에서 활동하면서 한층 '코리아 브랜드'를 홍보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며 수출만이 살 길인 한국이 미국 시장을 잘 알아 더 큰 시장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옥타에서 수출상담회를 진행하면서 보람도 느끼지만 답답함도 많았다는 비비안리 대표는 한국기업들이 단지 현지 한국마켓에 물건을 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현지 마켓 진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패키징, 디자인은 물론 브랜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 ©베타뉴스
     
    한식에 이어 비비안리 대표는 한국중소기업의 화장품을 미국에 소개하는 일을 맡게됐다. 그가 처음 대행했던 기업은 패션업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라 미국 화장품 시장 진출을 위한 홍보마케팅에 한계가 있었다. 첫 론칭한 2 in 1, 3 in 콘셉트의 클렌징 제품이 미국 소비자에게 낯설게 다가가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 트렌트가 너무 빨리 바뀌는 바람에 뒤늦게 미국에서 터지는 경우에는 제품 공급에 어려움이 있던 적도 있었다.
     
    그는 한국 화장품이 미국에서 먹히려면 40대 이상의 고객을 타겟으로 해야한다며 저가 전략으로 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만을 바란다며 '브랜딩' 개념 없이는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꼬집었다. 비비안리 대표는 화장품 분야는 자신있게 성과를 이뤘다고 말하는 식품 분야와는 달리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장은 유럽기업들이 잡고 있다며 K-뷰티가 요근래는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맥을 못 추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 기업들이 세포라, 얼타, 코스트코 등에 입점하는 것만 목표로 하고 그 이후의 계획이 없다며 미국 시장에 먹히려면 마케팅에 투자하는 한편 장기적 브랜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소매점에서 업체들에게 환불 비용을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기업의 브랜딩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비비안리 대표는 K-컬처가 전세계를 열광시키는 이 시대에 미국과 한국 양쪽의 시장을 잘 아는 젊은이들이 한국기업의 미국 진출을 돕는 가교 역할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며 옥타에 바라는 바를 피력했다.
     
    이를 위해서 옥타가 전세계의 차세대 회원들을 위한 사업에 더욱 중점을 둬서 앞으로의 대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는 그들이 앞으로 한국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각국에서 비즈니스 분야는 물론 정치인으로서도 성장해야 고국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비안리 대표는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맨손으로 미국땅에 섰던 부모 세대처럼 헝그리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면 틀림없이 결실을 이룰 것"이라며 "한국에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같은 큰 시장을 바닥부터 꿰고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한다면 앞으로 더욱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베타뉴스 유주영 기자 (boa@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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