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한은 "조달청이 기가막혀"...조달청 원시행정에 한은, 월세살이 연장비용 수백억 날려


  • 조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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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9-06-18 09:24:18

    ▲구(舊) 한은 본관 및 별관 © 한은 제공

    한은 통합별관 공사를 맡은 조달청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법령을 위반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바람에 한국은행은 기약없는 월세살이에다 수백억원의 월세를 더 물어야할 처지다.

    18일 한국경제 등 보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조달청은 2017년 12월 삼성물산 현대건설 계룡건설이 참여한 입찰에서 계룡건설을 낙찰예정자로 선정했다. 계룡건설이 써낸 가격은 공사예정금액인 2829억원을 4억원 초과했다.

    2위인 삼성물산보다도 589억원 높았지만 기술력 평가에서 계룡건설이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물산과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와 감사원 감사 등이 이어지면서 조달청은 입찰공고를 취소했다.

    시공사 선정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면서 내년 하반기로 예정됐던 한은 통합별관 완공 시기는 적어도 2년 이상 늦춰지게 됐다. 한은은 최소 300억원(월세 13억원)의 임차료를 추가로 내야 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기약 없는 월세살이를 ‘깜깜이 조달행정’이 낳은 예산 낭비 사례로 보고 있다. 지난달 계룡건설이 낙찰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공사는 더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한은뿐만이 아니다. 조달청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구센터 신축공사, 올림픽스포츠콤플렉스 조성공사 등도 시공사를 선정했다가 최근 취소하면서 건설사들의 줄소송에 휘말렸다. 한은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등은 공사가 차질을 빚자 조달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검토에 들어갔다.

    조달청의 공공발주 ‘부실 낙찰 논란’이 줄소송 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달청이 한국은행 통합별관 공사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구센터 신축공사, 국민체육진흥공단 올림픽스포츠콤플렉스 조성공사 등을 위탁받아 시행한 낙찰 예정자 선정 과정에서 비리의혹 논란이 불거져 최근 입찰을 모두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이들 공사의 낙찰 예정자인 계룡건설, 동부건설, 현대건설 등은 잇따라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가처분 소송을 두고 차순위자인 삼성물산이 공사를 맡게 되거나 조달청이 재입찰을 진행하게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계룡건설의 낙찰이 무효처리 된 상황에서 재판부가 이와 배치되는 결론을 낼 확률은 적다는 것이다. 또 조달청이 한은 별관공사 논란을 계기로 지난달 말 혁신안을 내고 예정가격 초과입찰을 명확하게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고려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다. 가처분 소송 결과에 불복해 추가적인 법정다툼이 진행될 경우 한은 별관공사의 착공시기가 최소 1년 이상 더 미뤄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차순위자인 삼성물산이 한은 별관공사건의 계약을 맡게 될 경우 계룡건설이 낙찰예정자 지위확인을 위한 본안소송과 계약이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함께 제기하는 경우다.

    만약 재판부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올때 까지 착공은 불가능해진다. 이 경우 예정 공사기간이 최소 30개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23년 중에나 준공이 가능하다. 이것도 본안소송과 공사 기간을 최소한으로 계산한 것이라 2023년 중 준공이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일단 공사가 진행되면 추후 본안소송에서 원고의 청구가 이유있는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공익을 고려해 종국판결로는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 사정판결이 나올 수 있어, 일단은 공사진행을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신청이 제기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더라도 본안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는 시공사의 지위가 불안해 공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2015년 안전문제 등으로 서울 남대문로 본관 옆에 있는 1별관을 재건축하고 2별관과 본관은 리모델링하기로 하면서 조달청에 30억원을 주고 일을 위탁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2017년 12월 낙찰 예정자 선정 당시 계룡건설이 써낸 가격(2831억원)이 공사예정가격(2829억원)을 넘겼는데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을 제치고 1위를 한 것이다. 2위였던 삼성물산과는 589억원 차이 났다. 가격 부문에서 입찰에 참여한 3개 건설회사 중 꼴찌를 했는데 기술 평가에서 후한 점수를 받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조달청은 이 과정에서 국가계약법령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예정가격 초과 입찰이 가능한지도 확인해보지 않은 채 임의로 입찰했다. ‘입찰 비리가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조달청의 위법한 조달행정 농단이라며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입찰이 부적절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조달청은 지난달 10일 입찰 공고를 취소했다. 하지만 이번엔 계룡건설이 반발하며 조달청을 상대로 ‘낙찰예정자 지위 확인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계룡건설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본안소송을 통해 법적 공방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한은 통합별관 공사도 하염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은 건설업체들이 제기한 가처분 소송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공사가 지연되면서 한은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은은 2017년 5월부터 서울 세종대로에 위치한 삼성본관 1~17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데 매월 임대료가 13억원이다. 연 단위로 150억원을 쓰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1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별관 공사가 1년 이상 표류하면서 차질이 많이 생겼다"며 "조달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 향후 조치는 조달청의 입장을 지켜보고 한은이 응당해야 할 조치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달청이 단순히 예정가격 초과 건설사를 선정했다는 사실보다 기술평가를 왜곡해 특정 건설사에 몰아주기를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은 본관과 별관은 국내 최고 수준의 보안 기능과 전산 기능을 확보해야 하는 데다 통화정책의 상징성이 크다 보니 공공발주 공사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는 조달청에 맡겼다”며 “하지만 조달청의 행보를 보면 전문성과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달청은 이에 대해 “입찰의 공정성, 투명성 시비를 근절하기 위해 예정가격 초과 응찰을 불허하기로 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며 “내부 직원 평가위원을 최소화하고 재취업 퇴직자 이력도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베타뉴스 조창용 (creator20@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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